정문의 문짝과 창살은 모두 신식 문양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고
아예 색장식도 하지 않은 나무 그대로였다.

물로 반들반들하게 닦아놓은 높은 벽돌 담장, 그 아래 덩굴 풀무늬를
새겨넣은 흰 돌층계, 그리고 정문 양편으로 뻗어나간 흰담장, 그 기초를
이루고 있는 호피석등등 우선 야단스럽게 요란하지가 않아 마음에
들었다.

"문을 열라!"

정문을 문객들과 함께 바라본 가정이 크게 고함을 치자 안쪽에서
집사들이 문을 열었다.

정문이 천천히 열리며 거대한 산이 눈앞을 턱 가로막았다.

"참으로 훌륭하게 축산을 하셨습니다"

문객들이 칭찬을 하자 가정이 기분이 좋은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 산이 없으면 정문을 열자 마자 원내가 훤히 다 보일테지만,
이렇게 산이 가로막고 있으니 자연히 그 뒤에 어떤 풍광이 펼쳐져 있을까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단 말이야"

가정이 축산을 그런 식으로 해놓은 이유를 은근히 자랑삼아 설명하자
문객들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산을 품을 만한 넓은 가슴을 지닌 자가 아니고는
차마 이런 어마어마한 구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계속 걸어나가보니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 흰 바위들이 여기저기 이끼를 덮어쓴채 세워져 있었다.

어떤 바위는 괴물 같기도 하고 어떤 바위는 맹수 같기도 했다.

햇빛을 가린 등나무 덩굴 밑으로는 오솔길이 고불고불 나 있었다.

"자, 이쪽 길로 해서 들어갔다가 저쪽 길로 해서 나와보자구. 그래야
이 원내를 샅샅이 구경할 수 있을 테니까"

가정은 보옥의 부축을 받아가며 가진을 앞세우고 고갯길을 올라섰다.

문득 산마루에 거울같이 깎아 세운 바위 하나가 일행의 눈에 들어왔다.

"자, 저 바위부터 시작해볼까?"

가정이 멈춰서서 완상하는 태도로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며 바위를
올려다보았다.

보옥은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죠"

문객들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가정과 비슷한 태도로 바위를 올려다
보았다.

아니, 저 사람들이 무얼 하나.

보옥의 궁금증은 더해갔다.

문객들이 여러가지 이름들을 불렀다.

그제서야 아버지 가정과 문객들이 별채 원내에서 이름짓기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옥이 눈치챌 수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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