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부내에서 통상외교의 베테랑을 꼽으라면 누구나 선준영 외무부
제2차관보(56)를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62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3부에 합격, 외교관의
길로 들어서 통상2과장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주미경제공사 체코대사 국제
경제통상대사 등 통상분야 외교관으로 일관해 왔다.

선차관보는 지난 93년에 설립된 APEC(아태경제협력체) 무역투자위원회
(CTI)의 초대의장도 맡고 있다.

21세기 한국외교의 방향과 현안 등을 들어본다.

< 편집자 >
=======================================================================

-얼마전 한미자동차협상이 우여곡절끝에 타결됐다.

그러나 앞으로도 미국의 개방압력은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정부는 안되는 것은 과감히 "NO"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아직도
대미협상에서 저자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원칙적으로 통상문제는 수출업자와 수입업자간에 풀어야할 문제지만
현실적으론 그렇지 않다.

미국의경우 해당지역 의원등이 지역민원 해결차원에서 많이 개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문제가 정부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올해초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상황이 달라졌다.

과거엔 마찰이 생길때 마다 미국이 "301조로 보복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었지만 이젠 한계가 있다.

WTO출범으로 한국은 과거와 달리 WTO에 가서 떳떳하게 대응할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해 WTO체제로 한국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다자주의"로 바꿔
예봉을 피할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는 김영삼대통령의 APEC정상외교이후 "경제외교"의 중요성을
주창하고 나섰다.

그러나 아직도 외무부내에서조차 경제.통상파트가 정무나 지역파트에
비해 빛을 못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반대다. 지난 80년대말 냉전이 종식된 이후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외교정책을 정치.안보와 경제.통상으로 구분할수 없게 됐다.

대통령도 정상회담때마다 통상문제를 다루지 않을수 없는 시대 아닌가.

외무부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는 유엔가입이나 비동맹외교가 중요해 정무파트가 각광을
받았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젠 장.차관이 모든 통상문제를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이르렀다.

외무장관회담에서의 논의내용도 60% 이상이 경제.통상문제일 정도다.

외무부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젊은 사무관이나 과장급들중 상당수가 통상쪽에 오고 싶어한다"

-통상교섭의 성패는 교섭에 임하는 인력의 경쟁력으로 좌우된다고 본다.

그런면에서 통상업무를 담당하는 외무부나 통상산업부내에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견해가 많은데.

"선진국과의 통상교섭력이 다소 뒤처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앞으로 한국의 위상이 점점 올라가고 교섭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통상인력을 늘려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현재 정부는 외무부직원뿐만 아니라 통상관련부처 직원들을 전문가로
육성시키고 현장교육(OJT)을 통해 교섭기회를 갖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 통상협상은 변호사가 주도할 것이란 예상이다.

우리도 외무부와 통상산업부가 통상전문 변호사나 공인회계사를
특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않나.

"그렇다. 대외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건 법적 지식이다.

외국의 경우 변호사가 교섭에 상당수 참여한다.

앞으로 변호사 풀(POOL)을 활용,쌍무및 다자교섭에 활용할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외무부는 내년예산에 변호사 고용비용을 반영, 1~2명의
외국변호사를 통상협상에 이용할 방침을 세워놨고 점차 그 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 현행 외무공무원법은 과거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했던 사람은
외교관이 될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법을 개정해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다시 국적을 취득하면 쓸수있도록 할 생각이다"

-아직도 통상교섭권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이번 자동차협상때도 외무부와 통상산업부가 신경전을 벌여 결과적으로
국익을 제대로 못챙겼다는 지적이다.

"통상현안이 많다보니 부처간에 다소의 긴장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조화의 과정으로 보는게 타당할것 같다.

현행 정부조직법상 통상교섭은 외무부가 하게 돼있지만 관계부처간
이견이나 혼선을 막기위해 타부처와의 협의가 매우 중요하다"

-아태경제협력체(APEC)의 역내국간 무역.투자자유화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의 양대자유화규약및 MAI(다자간투자협정)등 다자기구내에서의
무역.투자자유화규약은 한국경제엔 위협요인 아닌가.

"OECD가입으로 자본이동이나 금융개방 속도가 빨라지고 다자간투자협정
등으로 인해 개방의 폭도 커질 것이라는 우려는 당연하다.

그러나 개방이란 건 항상 도전과 기회가 동시에 주어진다고 본다.

나라에 따라 도전에 주저앉느냐, 기회를 포착해 발전계기로 삼느냐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한국은 OECD나 APEC이 요구하는 수준의 "개방"엔 자신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 김정욱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