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 국회의원 / 민자 >

일전에 교포실업가들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하던중 어느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적이 있다.

"부시 전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한쪽은 공화당이고 한쪽은 민주당, 또는 나이가 많은 보수주의
출신과 서민출신의 진보적 경향을 가진 젊은 세대차이정도로 나누면 될까요"

별생각없이 대답을 한 나는 이내 무안해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은 부시는 산업사회의 마지막
대통령이고 클린턴은 정보화사회의 초대대통령이라고들 하더군요.

정치인의 평가기준은 나이나 정파보다는 그 사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업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국은 그렇지 않은가요"

클린턴이 그렇게 훌륭한 대통령인지의 여부와는 별도로 그가 앨 고어
부통령과 함께 정보고속도로 건설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새로운 미국의
건설을 주도해나가는 것을 평가한 대목이다.

어떻게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지만 나는 자괴감을 떨구기 어려웠다.

전문경영인의 생활을 마감하고 정치에 들어온지 3년남짓한 시점에 기성
정치의 논리에 벌써 익숙해진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는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긴다는것.

이 평범한 정치의 본질을 우리네 정치인들은 과연 "현실과 관행"의 이름
으로 외면해 오지는 않았는지, 또 우리 국민들은 우리 정치가 그같은 본질에
충실하도록 어떤 격려와 질책을 보내왔는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 절실해진다.

국가이익은 지역 이기주의로, 정치이념은 계파 이해관계로, 소신은 굴종,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로 뒤바뀌어 왔던 것이 우리의 정치는 아니었던가.

전문성보다는 잡식성이, 비전보다는 임기응변이, 토론과 타협보다는 명령
과 투쟁이, 생산보다는 소비가, 정책보다는 경조사 챙기기가 이 시대의
주류 정치인을 길러낸 것은 아닐까.

아니 무엇보다도 기성관념을 떠나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객감동의
정치와 정치인이 이 땅에 나올수는 없는것일까.

정치에는 아무런 경력이 없지만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걸프전의 영웅 파월 전합참의장이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회장같은
사람이 우리정치와 사회에도 통용될수 있을것인가.

이제 더이상 정치가 국가경제와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합의점에 우리는 도달했다.

고정관념에 젖은 매너리즘으로는 도무지 타파할 길이없어 보이는 우리
정치를 제로 베이스부터 개조 개선 개혁해 나갈 정치 이노베이션의 기술을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

정치의 R&D(연구개발)가 더욱 필요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