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모리 히사오 <일본 경제연구센터 이사장>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통산성 경제기획청
일본경제연구센터를 거치면서 조사및 계획 업무에 종사, 50년 가까이
아시아경제를 관찰해왔다.

나는 전쟁직후부터 10여년가량 "아시아사회정체론"을 굳게 믿고 있었다.

뮈르달은 자신의 저서 "아시아의 드라마"에서 아시아국가들은 게으른
국민, 빈곤한 생활, 권위적 지배구조등 경제발전에 불리한 모든 제도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이것이 아시아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이같은 학설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지난 50년대에는 일본이 눈부신 발전을 했다.

뒤를 이어서 대만 한국 홍콩 싱가포르가 성장가도에 들어섰다.

말레이시아 태국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 후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도 발전대열에 올라섰다.

필리핀및 미얀마에도 서광이 비쳤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도의 발전가능성에 많은 점수를 주기 시작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성장률은 지난 70년대 5.6%, 80년대 6.9%로
증가했으며 90~95년까지는 한층 높아진 7.5%를 기록했다.

현재는 아시아가 세계성장의 중심이라는 것이 통설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21세기 초반에 아시아 경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여기에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첫번째는 이같은 아시아의 눈부신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한
논란이다.

아시아의 고도성장이 오래 지속되지않을 것이라고 주장,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끈 사람은 스탠포드대학의 폴 크루그만이다.

그는 "아시아경제의 신화" The Myth of the Asia"s Miracle(Foreign
Affairs, 1994 )라는 논문에서 "오늘날 아시아의 고성장은 자본및 노동
투입량을 증가시켜 이뤄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은 거의 없다.

이래서는 성장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최근 동아시아국가의 성장경향을 그대로 끼워맞춰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50년대 미국학자들이 브레즈네프시대 경제상황에 비추어 소련이
1970년대말에는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처럼 잘못된 생각"
이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크루그만의 성장 부정론은 옳지않다.

아시아는 노동및 자본량 증대에 의해서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기술혁신도 매우 적극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대만은 아시아지역중에서 가장 현저한 기술혁신을 이룩하고 있는데 지난
80년대에 신죽과학공업단지를 건설, 전자분야의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은 이에 훨씬 앞선 196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세웠다.

이러한 과학기술중시 정책이 오늘날 대만과 한국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그밖의 나라에서는 기술도입의 역할이 크다.

일본 미국 유럽국가들로부터 섬유 잡화 철강 내구소비재 전자부품 자동차
집적회로(IC)조립 반도체제조기술 전기통신기술등이 활발히 도입됐다.

기술혁신에 열의를 보이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아시아 성장에 기술혁신이 기여하지않는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

앞으로도 아시아국가들은 기술혁신에 따른 성장을 계속해나갈 것임에
틀림없다.

두번째 논쟁은 아시아 성장을 어느나라가 주도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지난 60년대및 70년대에 일본에서 유행했던 성장론에 "안행(기러기떼)
형태론"이 있다.

창공을 나는 기러기의 대열처럼 일본을 선두로 신흥공업국(NICS)
동남아국가연합(ASEAN)국가들로 발전이 이행되고 있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앞으로 성립될수 없다.

94~95년을 예로 들면 일본의 성장률은 1%로 아시아에서 가장 낮다.

NICS는 7%,ASEAN은 7.5%로 꽤 높다.

중국은 11%이다.

다시말해서 뒤쪽 기러기일수록 성장속도가 빨라 국가간 소득수준 격차가
좁혀져 안행형태는 무너져가고 있다.

1인당 GDP는 지난해 일본의 경우 3만7천달러, 홍콩및 싱가포르는
2만2천달러정도로 일본에 근접하고 있다.

대만 1만2천달러, 한국 8천5백달러로 일본을 급격히 추격하고 있다.

성장속도가 빠르기때문에 일본과의 소득격차가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점유율로 계산한 소득이나 구매력평가로 환산하면 대만및 한국과의
소득격차는 현재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 93년 세계은행이 보고서에서 구매력평가로 측정한데 따르면 오는
2002년에는 중화경제권(중국 홍콩 대만)의 GDP가 9조8천억달러에 달해
미국의 9조7천억달러를 초과, 세계최대가 된다고 발표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의 안행형태가 변화해가는 것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지표는 최근
동아시아국가들사이에서 기술및 자본의 흐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국은 대만 한국 싱가포르 홍콩,수입국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베트남등이다.

이처럼 기술및 자본의 흐름이 활성화된 것은 아시아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나라가 일본뿐아니라 다른 나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번째 논점은 아시아국가들이 각국의 경제를 잘 조화해나가면서 성장할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종래 아시아국가들의 국제분업은 말하자면 수직분업이 주류였다.

일본쪽에서 보면 일본이 아시아국가들로부터 음료 원료 연료등을 수입,
제품을 수출하는 타입의 분업이었다.

이같은 분업으로는 경제마찰을 일으킬 소지는 적다.

그러나 이러한 분업구조는 아시아국가들의 공업화에 따라 결정적으로
변화했다.

지난해 일본의 수입상품을 보면 1위는 석유,2위는 목재인데 그 다음으로는
3위 사무용기기, 4위 전자부품, 5위 자동차, 6위 의류와 공업제품순이다.

국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전자시계는 60%, 컬러TV 50%, 비디오
25%순으로 열거된다.

일본기업들은 아시아국가들의 기업과 합작기업을 설립하거나 위탁생산
계약을 맺어 해외에서 생산한 것을 수입하게 되었다.

당초 일본에서는 저렴한 수입상품과의 마찰및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에
따른 경제공동화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시아전체를 하나의 생산영역으로 보고 가장 적합한
나라에서 생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현재 아시아국가들사이에서 제품끼리의 거래라는
수평무역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서 값이 싼 상품의 수입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있으나 지금상황으로는 아시아국가들간에는 경제마찰이 그다지
심하지않다.

경제적으로는 상호간에 시장을 제공하는 조화된 발전이 실현되고 있다.

태풍의 눈이 될 위험이 있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경제규모로 보나 10%를 넘어서는 최근의 경이로운 경제성장률로
보아도 장래 아시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나라다.

중국경제는 빈부격차의 증대, 국영기업의 적자, 인플레등을 들어 곤란한
상태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같은 어려움은 발전초기에는 피할수 없는 것이고 이를 너무 크게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는 중국이 확실히 성장궤도에 올라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군사대국이 되지않고 협조적인 국제정책을 취하면 중국의 성장이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지않고 아시아 발전에 강력한 엔진역할을 해낼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시아경제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도 고도성장이 지속되고 소득수준도 높아 무역뿐만 아니라 기업간
상호협력도 증대해서 경제관계는 한층 긴밀해질 것이다.

아시아적 정체론은 왜 맞지않는가.

중동및 아프리카등 다른 발전도상국이 빈곤으로부터 벗어나지못하고
있는데도 왜 아시아는 눈부신 성장을 했는가.

이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가지 연구가 행해졌다.

세계은행은 지난 93년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보고서에서 아시아의
성장원인으로 매크로경제의 안정화, 인재육성, 효율적인 금융제도 창설,
가격불안정 억제, 해외기술 도입등을 들고 있다.

나는 그밖에도 각국간의 협력이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는 것도 꼽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는 유럽연합 (EU)처럼 조직적인 경제협력기구는 없었으나
실질적인 경제권이 존재, 협력이 진행됐다.

홍콩.광동간 화남경제권, 태국을 중심으로한 바트( baht :태국화폐단위)
경제권, 황해경제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일부를 연결하는
적도경제권등이 그것이다.

환일본해경제권도 형성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자연발생적인 경제권을 제도적으로 감싸안으려는 APEC의 발전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PEC회의의 "보고르선언"에서 선진국은
오는 2010년까지.발전도상국은 2020년까지, 투자.무역 자유화를 이행할
것을 선언했다.

올해 11월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APEC총회는 이 선언을 구체화하는
첫걸음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자유화를 이행하는데는 각 나라들이 제각기 사정이 있어 여러가지
어려운문제가 있겠지만 보고르에서 아시아측의 이니셔티브로 자유화가
거론된 것은 커다란 시대변화를 시사하는 것이다.

종래는 선진국의 자유화요구에 대해 발전도상국은 보호주의를 주장해
방어전을 펴왔다.

이번 선언은 발전도상국이 자국의 장래에 강한 자신을 갖기시작한 것으로
상징된다.

경제는 본질적으로 공존공영의 관계이다.

A국의 번영은 B국의 이익이며, B국의 발전은 A국의 성장을 돕는다.

이것은 매우 소박한 견해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아국가들이 일제히
발전해가고 있는 것은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입증한다.

단기적인 이해를 따지지말고 협력을 추진해가는 것이 아시아의 번영을
위한 길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