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비서자리를 채우지 않은채 당창건 50주 행사를 치르고 난 북한은
이제 새삼스럽게 부가사의한 이질성을 드러내고 있다.

작년 7월 김주석 사망후엔 마치 당장이라도 격변이 일듯 숨결이
거칠다가도 이내 잠잠해지는 예측불허의 동중정 정중동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외부에 노출된 여러 편린들을 이어 보면 정중동의 큰 변화가
진행중이라는 분석이 떠오른다.

사망후 외부에서 점쳐지던 권력 승계의 여러 차례 적기들이 모두
빗나갔다.

지난 10일의 창당 50주마저 비껴 1년3개월을 넘자 북한체제에 대한
상식적 접근은 무의미해졌다.

사망 직후 당총서기 국가주석이 이미 법적 후계인 정일에게 지체없이
승계되리란 예측은 상식이었다.

의외의 경합이 있더라도 공석인채 오래 둘수는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해석에 이견이 없었다.

승계가 지연되면서 건강 악화설,친족간 불화설,탈상후 승계 효도설,
심지어 사망설까지 뒤따랐다.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해석은 소위 유훈 통치설이다.

카리스마가 없는 아들이 선친의 후광을 상당기간 활용할수 밖에 없다는
분석으로서 금후에도 설득력이 있을 만하다.

그러나 경제난 위에 대수해가 겹치면서 순탄승계의 비관론,붕괴
불가피론까지 대두됐다.

공산권의 연쇄파국을 면하려면 제한적채택이 불가피하다는 김주석
생존당시의 개방론이 사후시도되는 도중 난국이 더욱 겹치자 개방과
반개방의 대립은 격화할수밖에 없다.

이럴 때 최후의 보루는 군부다.

김정일이 군사위원장직을 기반으로 부친 사후 군부대 시찰을 계속하며
권좌를 지켜온 사실,총서기취임 대신 국방장관 보임동 군수뇌부 대폭
승진인사를 단행하고 당창건일에 대대적 군사 퍼레이드를 벌인 일련의
동향은 군의 비중증대의 분명한 정황증거다.

이것은 나아가 중첩 난관속에 북한이 공산정권의 당절대우위 관례를
군우위로 전환을 모색할 가능성을 낳는다.

어쩌면 군의 실권장악은 숭계지연의 결과적 현상이라기 보다 승계지연을
부른 핵심 요인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국감의 안기부 답변에서 언급되었듯이 경수로관계 접촉에서 북한
관리들이 군의 강성을 대화진전 애로의 하나로 실토했다는 사실의
뜻하는 바가 깊다.

성질상 핵개발중단,대외개방등 화해무드에 군이 체제와해를 우려,
반발함은 어디서나 상식이다.

물론 현단계에서 이러한 예단은 여러 변수를 전제한다.

만일 북이 당면한 여러 난점에 대해 남이 정도이상 이를 과장하고 그
극복능력을 저평가하여 쉽게 붕괴하리라 만심한다면 북한 군부가 무력
으로라도 최후의 역전을 꾀하려는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지 모른다.

그동안 김일가의 신격화와 부자승계,권력공백과 유훈통치등 헤아릴수
없는 북의 절망적 이질성에 대해 그 반향은 양극단이었다.

한마디로 곧 쓰러지니 기다리자,이럴때 아주 쓰러뜨리자는 충동이
그 두 주류다.

그러나 저들의 파괴력 단결력 지구력은 만만치 않다.

신중한 자세의 꾸준한 양면대응이 소중함을 잊지 말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