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경쟁력"이다.

거대 외국은행과 한판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외국은행에 못지않은
경쟁력이 필요하다.

경쟁력강화의 첩경은 대형화다.

개별은행의 대형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질수 없다.

그래서 얘기되는게 합병이다.

고만고만한 은행을 합해 놓으면 단숨에 대형화를 이룰수 있다.

상호보완적인 은행이 "1+1"로 합한다면 그 효과는 "2"이상이다.

그래서 은행합병의 필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합병의 당사자들인 은행직원들은 물론 정부관리 교수등 전문가 모두 합병이
시급하다는데 동의한다.

현재와 같은 은행경쟁력으론 외국은행과 효과적인 게임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 자본시장의 문을
활짝 열수 밖에 없다.

저금리자금이 들어오고 전투력을 갖춘 핫머니가 몰려들건 뻔하다.

자칫하면 실물경제에서 애써 벌어들인 돈을 머니게임에서 한꺼번에 빼앗길
가능성도 높다.

더욱이 외국의 대형은행들은 앞서서 합병을 꾀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일본의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이 세계최대인 도쿄미쓰비시
은행을 출범시키자는데 합의했다.

지난 8월엔 각각 미국내 랭킹 4위와 6위은행인 케미컬은행과 체이스맨해튼
은행이 합병을 발표했다.

지금도 국내은행보다 덩치가 몇배나 큰 은행들이 그것도 모자라 무게를
늘리려 합병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부에서도 합병에 꾀나 적극적이다.

지난 91년엔 "금융기관의 합병및 전환에 관한 법률(합전법)"을 제정했다.

93년 신경제계획을 입안하면서 금융기관의 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정책의
줄기로 잡았다.

올 정기국회에서는 "합전법"과 "조세감면규제법"개정안을 처리키로 했다.

금융기관이 합병에 따라 비업무용으로 전환된 지점건물등 부동산을 매각할
경우 특별부가세(양도소득세)액의 50%를 감면해 주는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는게 골자다.

한마디로 "세금감면등 각종 혜택을 줄테니 합병을 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정작 합병의 방법론에 들어가면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현실적으로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은 해고문제다.

두 은행이 합병한다면 직원의 30%는 어떤식으로든 정리가 불가피하다.

그래야만 경쟁력강화라는 합병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어서다.

그러나 노동법에는 "정리해고"가 불가능하도록 돼있다.

임의로 직원을 정리할수는 없다.

법을 지키자면 다른 직장을 마련해주든지 아니면 "나가달라"고 설득해야만
한다.

합병을 추진할 주체가 없는 것도 걸림돌이다.

외국은행과는 달리 국내은행은 주인이 없다.

은행장자신이 고용된 사람이다.

욕을 먹으면서까지 합병이라는 총대를 매고 나설리 만무하다.

그래서 합병의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합병을 유도하되 인위적으론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역시 욕을 먹지 않겠다는 태도다.

문화적 차이도 문제로 꼽힌다.

외국과는 달리 국내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강하다.

좀 보수가 많으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외국은행들과는 다르다.

또 학연 지연등의 인맥이 강하게 작용하는 국내은행의 풍토를 감안할때
두 은행간 화학적 융화엔 시일이 걸릴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은행의 합병이 "현재형"이 되기위해선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한다
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은행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그래서 망하는 은행이 생기다보면 합병은
자연스러운 경제현상이 될것이라는 논리에서다.

그러기위해선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뜨리려는 정부의 노력
이 선행돼야만 한다.

이렇게 보면 합병을 통한 은행의 대형화를 앞당길수 있느냐는 과제의 상당
부분은 정부에 달려 있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