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은 70년대말부터 80년대 중반에 이미 1인당 GNP 1만달러를 달성
했다.

올해로 1인당 GNP 1만달러를 돌파하게 될 우리나라는 국민소득면에서는
10~17년 가량 뒤늦게 이들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셈이다.

우리보다 앞서 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었던 선진국들이 당시 어떤 경제
여건에서 이의 달성이 가능했었는지와 당시 그들에게는 어떤 경제문제가
있었는지, 그들은 이에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해방후
50년만에 대망의 소득 1만달러고지에 등정한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선진국들이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어떻게 맞이했는지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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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시정책 ]]]

<>.미국 = 미국은 독일과 함께 G7국가중에서 가장 이른 지난 78년 1인당
GNP 1만달러를 돌파했다.

미국은 70년대초 1차 석유파동으로 침체기를 겪었고 70년대 후반에는
세계경제의 회복세를 타고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78년은 미국 경기회복기의 중간에 위치했던 시점이었으나 이후 79년부터
80년대 초반까지의 제2차 석유파동으로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당시 미국의 당면 경제 과제는 가속화되는 인플레와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확대, 일본등 여타국가와의 경쟁 심화등이었다.

미국은 당시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세율을 인상했고 정부재정지출을 감축
했다.

또 민간부문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와 정부기능의 과감한
축소를 단행했다.

공급중시경제학이 유행했던 것도 당시였다.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위해 통화공급을 직접 통제하고 여신 확대를 제한
하는등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쳐 나갔다.

이같은 미국의 정책은 물가안정에는 성공했으나 지나친 긴축으로 경기후퇴
라는 결과를 낳았고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를 낳지
못했다.

<>일본 = 지금부터 10여년전인 84년 1인당 GNP 1만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당시 일본경제는 79~82년까지의 제2차 석유파동으로 침체기에 빠져있다가
83~84년 수출 증가에 힘입어 회복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물가는 석유파동중 상당한 상승압력을 받았으나 즉각적인 가격현실화조치로
이를 흡수,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다.

83~84년중 수출호조로 국제수지 흑자가 크게 증가, 환율절상및 통상압력을
받기 시작했으며 85년 플라자 합의이후 가속적인 평가절상에 돌입하기 시작
했다.

당시 일본의 당면 과제는 70년대에 크게 증가한 재정적자를 줄이고 적정
경상수지및 환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또 경제의 효율성제고를 위한 규제완화도 새로운 과제로 대두됐다.

일본 정부는 이같은 과제 해결을 위해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정부투자기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는 한편 민영화를 단행
했다.

이같은 정책 결과로 일본은 공공부문 적자를 상당히 해소했으며 환율절상
으로 수출이 둔화되면서 내수위주의 성장기조로 바뀌었다.

물가는 안정기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영국 = 이탈리아와 함께 G7국가중에서는 가장 늦은 지난 86년 1인당
GNP 1만달러 시대를 맞이했다.

당시 영국은 대처 행정부의 규제완화 소득세감면 금융규제완화등으로 민간
소비 지출이 늘어나고 기업의 설비투자가 급증하는 내수확대로 80년대 초반
부터 경기호황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호황에도 불구,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국제
수지가 적자로 돌아섰으며 재정적자도 확대되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부문을 통한 통과공급을 억제
하는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독일 = 미국과 함께 지난 78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했다.

당시 독일은 성장둔화가 가장 시급한 경제문제였다.

76년 5.5% 성장에서 77년 성장률이 2.8%로 둔화되고 실업률도 4%를 기록
하고 있었다.

재정수지는 정부부문 차입을 줄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적자폭이 감소
하고 있었고 물가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국제수지는 큰폭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이로인한 환율 절상으로
수년간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독일 정부는 경기진작을 위해 대규모의 공공투자를 실시했고 부가가치세율
을 2%에서 1%로 낮추었으며 소득세및 재산세에 대한 감면을 확대하고 세율도
하향조정하는 정책을 썼다.

이와함께 인플레 방지를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했다.

<>.프랑스 = 미국이나 독일보다 한해뒤인 79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프랑스정부의 당시 당면과제는 85년까지의 높은 실업률(10.2%)과 높은
물가상승률(84년 7.4%, 85년 5.8%)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실업해소를 위해 감원제를 없애고 조기퇴직하는 사람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또 물가안정을 위해 통화량 규제를 강화했다.

[[[ 산업기술 정책 ]]]

<>.미국 = 냉전시대 미국의 과학기술정책은 국방 우주와 같은 특정연구
분야와 기초연구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80년대이후 미국산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감이 확산, 연방정부로부터 민간
부문으로의 기술이전과 민간의 연구개발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이
적극 전개됐다.

기술이전을 촉진하는 각종 법률이 시행됐고 정부와 대학 업계의 협력을
강화하는 각종 기술센터도 설립됐다.

민간부문의 연구활동 촉진을 위해 시험연구비세액공제제도가 실시됐고
민간기업의 공동연구에는 독점금지법 적용을 배제시키기도 했다.

<>.일본 = 70년대까지 해외기술 도입 중심에서 80년대부터는 후발국의
추격에 따라 창조적 선도적 기술개발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에너지 원자력등의 연구활동이 강화됐고 차세대산업기반기술 연구개발제도
와 같은 국가주도 연구개발사업도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또 신재료 신기능소자 생명공학등의 기반기술 분야에서도 기술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각종 정책수립과 지원이 이루어졌다.

<>.독일 = 독일의 경제적 성공은 고부가가치제품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최근 미국 일본등에 첨단기술분야에서 뒤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돼 연구
개발의 효율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업경쟁력 강화 책임은 근본적으로 업계에 있다는 것이 독일
정부의 기본적인 방침이며 연방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기초연구, 환경및
보건연구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기업의 연구개발활동에 대해 정부는 세제면에서 혜택을 주는 것과 규제를
완화하는 것등 주로 간접적인 지원방법을 쓰고 있다.

다만 전략적 기술인 정보공학, 에너지.재료 연구, 바이오테크놀러지등은
이들 기술이 산업경쟁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프랑스 = 70년대까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기술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70년대말부터 민간연구개발이 상대적으로 뒤졌다는 인식을 하고
연구개발을 국가정책의 우선과제로 삼아 연구개발비를 세액에서 공제해
주는등 민간의 연구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보다는 우주개발 민간
항공기 원자력개발 전기통신 국방등 대규모기술계획에 더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에따라 연구개발 활동이 특정산업분야와 국영기업에 집중돼 기술의 파급
효과가 적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민간의 연구개발활동이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고 국영기업의 연구개발비가 민간분야보다 많은 실정이다.

[[[ 경제지표 ]]]

1만달러 돌파 당시 선진국들의 경제상황은 나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고
1만달러 달성시점도 국가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 공통된 특징
을 찾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이같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소득 1만달러를 넘어선 시점에는
거시경제 지표상 몇가지 공통점을 찾아볼수 있다.

우선 대부분의 국가들은 2~3%의 낮은 물가상승률과 3~4%의 저성장구조를
갖고 있었다.

고임금 고성장의 개도국형 성장구조를 아직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이들 선진국은 낮은 인구증가율에도 불구, 높은 경제활동 참가로
비교적 안정적인 임금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노동시장구조도 신축성을 유지, 산업구조 고도화가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경제활동 참가율이 아직 낮고 임금및 노동시장구조가
조기에 경직돼있어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산업구조면에서는 농업 비중이 전체산업의 3% 수준이었고 제조업 비중은
대체로 25~30%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농업비중이 아직 7%로 이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제조업 비중은 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나 내용면에서는 조립가공업 중심으로
되어 있어 기계 부품등 자본재산업비중이 아직 낮아 실질적인 공업기반이
취약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저축률의 경우 일본(3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0%안팎이었고 투자율은
이보다 1~2% 낮아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35%의 높은 저축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투자율은 그보다 더 높아
경상수지는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밖에 1만달러 선배격인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정부규제나
서비스등 공공부문의 생산성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수도권과밀등에
따른 주택 교통 환경등 사회적 비용이 높은 편이다.

아울러 도로 항만등 사회간접자본도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복지수준도 이들
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