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만은 면하자며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경제가 드디어 국민소득(1인당
국민총생산)1만달러 시대에 이르렀다.

선진국에 비하면 10~20년 뒤진 것이긴 하나 무에서 1만달러까지 도달한
기간으로 치면 신화에 비유될만한 사례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국민소득을 오는 2001년에는 2만달러, 2005년엔 3만달러
를 넘기고 2010년에는 4만2,550달러까지 높여 국부의 규모를 세계7위로
끌어올려 놓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그려놓고 있다.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가는 기간도 남들은 10년가까이 걸렸지만 우리는
6년만에 이룩하겠다는게 정부의 계획이다.

외국의 어느 경제학자는 이런 우리경제를 "강제성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연스럽게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커진 경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키운
경제라는 얘기다.

목표점을 정부가 제시하고 수단도 정부가 제공하고 이탈자나 낙오자에
대한 처리까지 정부가 맡아준 관치경제라는 말이다.

그래서 빨리 성장할수는 있었지만 그만큼 알차게 크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표현의 뒤에 깔려 있다.

온실에서 비바람과 해충을 막아준 덕에 겉모습엔 손색이 없지만 속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성이 길러지지 않은 탓에 경쟁력이 약하다는 말도 된다.

압축성장과정에서 잉태된 부작용들이다.

양팽창 일변도의 성장일등주의 속에 가려진 질의 부실함이 그것이다.

계층간및 지역간 부문간의 불균형과 열악한 삶의 질에서 부터 정치적
낙후와 성숙되지 않은 국민의식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곳하나 견실하다고
내놓을 만한 대목을 찾기가 어렵다.

바로 이런 과제들이 1만달러를 넘기면서 우리경제가 풀고 가야할 숙제들
이기도 하다.

경제전문가들은 선진국들이 국민소득 1만달러를 맞았을 때보다 우리경제의
여건이 더 수월하다고들 분석한다.

영국(86년)과 독일(78년)은 성장둔화와 높은 실업률로, 미국(78년)과
이탈리아(86년)는 과도한 재정적자로, 스웨덴(78년)과 프랑스(86년)는
인플레로, 일본(84년)은 통상마찰로 애를먹고 있는 시기에 1만달러시대로
진입했다.

당장 풀어야할 현안때문에 다른 문제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비해 한국은 이들이 겪었던 문제들로 인해 고민하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돼온 고질적인 병폐를 과감하게 치유하고 거듭나는 전기로
삼을 호기라는 얘기다.

더군다나 근자에 들면서 가속화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우리경제의
본질적인 탈바꿈을 더이상 늦추지 못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정보화시대로의 진입, 뉴글로벌리즘 확산, 탈공업화 추세, 신세대의 등장,
신소비문화의 정착, 신산업과 신업태 대두, 이데올로기의 종언등 종전과는
시각을 달리하고 대응해야할 도도한 변혁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지금 이 바람을 타지 못하면 영영 세계의 열등국가로 낙오될지 모른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경제가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풀어야할 숙제로 정부와
민간간의 위상재정립을 꼽는다.

앞장서 끌고가는 정부가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작은정부"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입과 퇴출에 대한 정부개입을 극소화하고 경쟁은 민간에 맡기라는
뜻이다.

다음 과제가 불균형의 시정이다.

소득계층간 부의 불평등구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현상, 도시와
농어촌간의 격차등이 그것이다.

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누릴수 있도록 하고 특정계층이나 집단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작업도 선행돼야 한다.

교육과 환경 보건위생 문화등 각종 복지의 혜택이 보다 넓고 깊게 퍼져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최저수준의 생계와 기초적인 생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국민이
있어서는 안되며 1만달러를 넘기면서는 개인적인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는
노력까지 시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사회간접자본 확충도 시급하다.

이와함께 정치수준과 국민의식의 개혁이 따라야 한다.

정치인이 국민을 보살피지는 못할 망정 제발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만은
않도록 해달라는 얘기다.

무분별한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장악하는 구태가 더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게 경제계의 이구동성이다.

결국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는 정부와 기업 근로자 개인 모두에게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양에서 질로의 대전환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