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섭 <한남대 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아세안 지도자들은 92년1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제4차 정상회담에서
"아세안은 동남아 전체를 포용하는 폭넓은 지역협력을 위한 공동의 틀을
공급하고 동남아 우호협력조약에 의거, 모든 동남아 국가의 아세안 가입을
환영한다"고 선언하여 동남아 지역의 아세안화( ASEAN-izati on of
Southeast Asian Region )의지를 천명한바 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92년 7월 마닐라의 제25차 아세안외무장관회담
(AMM)에서 베트남과 라오스가 옵서버자격을 얻게 되었고, 93년7월의
싱가포르 AMM에서 캄보디아가 주최국의 게스트국가로 참석하였으며, 94년
7월 방콕 AMM에 미얀마도 고대하던 아세안의 초청을 받았다.

아세안은 나아가서 창립 28년만인 지난 7월 적대관계로 일관해온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을 일곱번째 정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베트남의 아세안 가입으로 현재의 옵서버 국가인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가 멀지않아 아세안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됨으로써 "ASEAN-10"의
동남아공동체가 가시화되고 있다.

동남아의 아세안화, 특히 베트남의 아세안 가입은 동서 양진영간의
이데올로기 경쟁시대가 막을 내리고 탈냉전 시대가 도래했음을 웅변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제 인도차이나 반도를 중심으로한 공산세력과 아세안을 중심으로한
중립적 민주세력이라는 동남아 지역의 양분법은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태국과 베트남 간의 역사적인 긴장관계는 이로써 과거사로 묻히게 된
것이다.

경제면에서 아세안 회원국의 확대는 잠재적 시장의 확장을 의미한다.

ASEAN-10의 인구는 4억6,000만명(92년)으로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
무역협정(NAFTA)보다 월등하게 많으며,국민총생산(GNP)은 4,500억달러
(92년)수준이나 풍부한 천연자원과 양질의 저임노동력에 넓은 시장성 등이
아세안 국가들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동남아의
경제발전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아세안은 가장 최근에 브루나이에서 열렸던 아세안경제장관회담(AEM)에서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의 당초 계획을 앞당겨 실현할 것을 결의한바 있다.

즉 2003년까지 아세안 역내관세를 0~5% 수준으로 낮추려던 계획을
2000년으로 앞당기고 2003년에는 관세 0%의 완전개방시장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AFTA확대계획의 일환으로 아세안은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등
신규및 예비회원국들에 "시장경제 모델도시"를 창설토록 권유하고, 이를
중점 지원함으로써 해당국가의 경제발전과 개방을 촉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신규및 미래의 회원국들과 기존 회원국 간의 경제적 격차를
최대한으로 극복함으로써 명실공히 동남아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면 동남아의 아세안화는
상당기간 동안 이질적으로 불공평한 실체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정치안보적 측면에서 동남아의 아세안화는 더욱 튼튼한 지역협력체로서
아세안의 정치안보적 지렛대 역할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아세안 회원국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한 목소리를 낼 때만
가능하다.

18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아세안의 결속력은 아무도 무시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세안이 아.태지역의 강대국인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을
극복하는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아세안의 과대평가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프래틀리군도 이슈는 아세안의 단결력과 순발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만약 아세안이 하나의 안보블록으로 중국에 맞서게 될 경우 베트남이
아세안의 회원국이 된 이상 동남아국가들의 반중국전선 형성 가능성이라는
아세안의 구조적 권한부여( structural empowerment )는 어쩔수 없이
현실화 될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8월초 브루나이에서 열렸던 제2차 ARF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국은 향후(외견상으로는 모르지만 실제적으로는)ARF와 같은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통한 분쟁해결을 원치 않을 것이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 션궈팡(심국방)의 "ARF는 스프래틀리 이슈와 같은
지역분쟁을 다루기에는 적절한 대화의 채널이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쌍무적인 협상에 의한 것이다"라는 발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태지역의 다자간 안보협의체 시도에 대한 중국의 외교정책은
대아세안 유화정책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는지도 모른다.

많은 전문가들이 동남아의 아세안화가 오는 12월 태국에서 개최될 제5차
아세안정상회담에서 현재의 경제및 정치안보 문제점의 해결방안과 함께
총체적으로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