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수교30주년을 맞아 정부차원의 한.일 신경제협력기구회의와 민간
차원의 한.일 재계총수회의가 4일부터 6일까지 잇따라 서울에서 열리게
된다.

한.일 재계총수들은 양국 민간경제계가 이제부터는 한.일 양자관계를
넘어 지역과 국제무대에서 상호협력하자는 내용의 합의문을 채택할 예정
이라고 하지만 수교30년이 되도록 아직 "양자 관계"조차 제대로 정립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일 관계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다.

이번 회의에서 일본정부와 업계는 자동차 고급 전자제품등 일부품목의
대일수입을 막고 있는 한국의 "수입지역 다변화제도"를 철폐하도록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 한다.

예를 들어 한.미협상에서 한국이 자동차시장을 미국에 큰 폭으로 개방한
마당에 일본차수입을 막고 있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에 대한 한국측 대응논리가 이번 한.미 자동차협상에서의
대폭적인 양보로 크게 약해진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일방적
으로 수세적 입장에 몰려 있는 것만도 아니다.

올들어 9월말까지 대일 무역적자는 107억6,200만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37%
나 늘어났으며 이같은 적자폭은 연말까지는 160억달러 안팎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이다.

물론 한국의 대일무역적자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 해도 갈수록 개선
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한.일관계의 핵심과제가
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때문에 수입선다변화 제도는 대일무역역조의 개선상황을 보아가며 점진적
으로 신축성있게 해제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실 대일 무역역조를 시정하지 않고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논한다는
것은 공허한 일일 뿐이다.

일본이 한국에 일본차를 팔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약삭빠르게 미국과 유럽의
대한 자동차시장 개방압력에 편승하는 일이 아니다.

일본기업의 대한 투자증대와 기술이전을 촉진시켜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에
따른 마찰을 해소하는 것만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다.

물론 무역역조 개선의 1차적 책임이 한국측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대일의존적 산업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또 대일수입의 65%를 차지
하고 있는 내수용 수입을 줄이지 않고서는 무역적자를 줄일수 없다.

우리 기업들도 외형성장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기술개발투자에 전력투구
해 설비와 기술의 대일 의존에서 벗어나야 하며 국민들은 사치성소비를
자제해야 한다.

끝으로 한.일 재계지도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선언보다 실천
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일 산업협력의 중요성은 이미 수교30년동안 수없이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실질협력의 가시적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 재계 총수회의에서 합의되는 사항만큼은 말의 성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겨져 양국 산업협력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