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 그린벨트의 훼손이 심해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던 일이다.

6.27선거때부터 그린벨트에 대한 시비가 심심치 않게 일더니 최근에는
한 지방정부가 그린벨트안의 토지형질변경을 허가했다고 해서 말썽이
되고 있다.

그린벨트로 불리는 개발제한구역이 20여년전에 지정되었을때만 해도 이
제도의 명시적인 주목적은 대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었지
오늘날 우리가 우려하는 그린의 보전,즉 산림의 보전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벨트의 40%이상이 임야가 아니라고 해서 이 제도의
존재의의가 근본적으로 손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떻든 그동안 숱한 물의를 빚어왔던 개발제한구역제도가 과연
당초의 주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였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은
것 같다.

그린벨트를 넘어서 계속 팽창하는 서울의 모습,그리고 마치 쥐가 뜯어
먹듯이 드문드문 무질서하게 개발되고 있는 서울 외곽지역의 개발양태를
보면 수도권의 경우에는 이 제도가 오히려 비뚤어진 도시개발을 조장
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벨트 제도가 그린을 보전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 큰 이견이 없는 것같다.

사실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그린의 확보가 그린벨트의 주목적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린벨트는 그 그린의 확보조차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있다.

벨트를 벗기려는 압력이 워낙 거세게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에는 그래도 그린벨트와 도시지역 사이에 자연녹지지역
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었지만 이것마저 대부분 개발되고 보니 이제 개발의
압력이 그린벨트의 턱밑에까지 다가왔다.

그린벨트지키기에 가장 앞장서야할 정부가 오히려 가장 앞장서서
그린벨트를 훼손하고 있으니 그린벨트를 지킬 명분조차 약해지는
듯하다.

여기에 그린벨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욕심마저
가세하고 보니 이제 그린벨트 방어는 한계에 달한 느낌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자는 주장이 가장 흔히 내세우는 논리는 이 제도때문에
토지개발이 너무 위축돼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경제적 손익을 따진다면 오히려 그린벨트를 존속
시켜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앞으로 국민소득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그린에 대한 국민의
수요는 다른 재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환경보전에 대한 국제적 압력 또한 게속 강화될 것이다.

그만큼 그린의 경제적 가치는 급속도로 커질 것이며 따라서 땅을 녹지로
남겨두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 될수가 있다.

예를들면 영국의 경우에는 그린벨트의 땅값이 그린벨트 밖의 땅값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멀지않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최근에는 그런 일이 벌어질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예컨대 요즈음 범람하는 광고를 보면 건축업자들이 전원주택이니 뭐니
해서 주택을 녹지와 묶어서 팔려는 의도를 잘 읽을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토지개발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당장 특정개인에
귀속되는데 반해서 그린을 보전함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장기에
걸쳐 불특정다수에게 분산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매우 커 보이고 반대로 그린을
보전함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매우 작아 보일수 밖에 없다.

이제 무슨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채 이대로 가다가는 개발로 인한
이익을 노리는 세력앞에 그린벨트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

그린벨트 제도실시이후 우리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 더욱
많은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그러한 변화들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환경보전에 대한 우리 국민과
세계인의 강력한 여망이다.

환경보전을 위한 움직임은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사회의 규범에
의해서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범지구적 움직임이다.

그러니 이제 그린벨트제도는 환경보전을 위한 수단으로 대폭 개편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그린벨트제도의 목적부터 대도시 확산방지보다는 그린의
보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개발제한구역이라는 공식명칭도 환경보전구역이라든지 또는 새 목적에
걸맞는 다른 명칭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린은 계속 묶되 벨트만 해제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벨트를 풀면 그린이 힘없이 노출된다.

문제는 벨트를 풀면서 그린을 방어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대안은 차라리 벨트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전 국토를 그린벨트로 묶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녹지,그리고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세계적
규범이 요구하는 녹지는 종전과같이 우리 도시와 뚝 떨어져 외진 곳에
있는 그런 녹지가 아니다.

우리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어 늘 접촉할수 있는 녹지이며 종전과
같이 바라만 보는 그런 녹지가 아니라 그 속에서 인간과 동식물이 같이
살아 숨쉬는 생동하는 녹지이다.

종전과 같이 단순히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생태계를
보호할수 있는 그런 녹지이다.

자연생태계를 보호할수 있는 녹지는 지금과같이 이곳 저곳에 산재해서
서로 격리된 녹지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연결된 녹지여야 한다는 것은
생태학 전문가들이 늘 하는 주장이다.

이런 녹지는 전국토를 그린벨트화하지 않고는 얻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