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대옥이 내일 온다고 하니 전날 밤 잠을 잘 이룰 수 없었다.

몇달동안 대옥을 얼마나 보고싶어 했던가.

상냥하고 어여쁜 설보채가 주위에 있기는 하였지만 새침하고 병색을
띤 대옥이 오히려 보고싶어 보채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보옥이었다.

다음날, 가련과 대옥 일행이 영국부로 들이닥쳤다.

집안에 경사가 생긴데다가 반가운 사람들이 몇달만에 돌아오니 다시금
온 집안은 기쁨으로 들뜨게 되었다.

그런 한편 대옥이 부친상을 치르고 오는 길이므로 대옥의 슬픔을
생각하고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눈물을 훔치던 사람들도 곧 기쁨으로 얼굴이 밝아져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였다.

대옥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반가움에 겨워 환히 미소를 짓곤 하였다.

보옥은 대옥이 아버지를 여의고 슬픈 나머지 병색이 더 짙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가 되어 대옥의 얼굴을 살펴보았으나 도리어 이전보다
건강하게 보이고 또 아름다워 보였다.

대옥은 아버지 임여해가 보던 책인지 여러가지 많은 책들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양주나 소주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문방구들을 보옥과 보채,
영춘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

보옥은 대옥이 사랑스러워 자기도 대옥에게 줄 무슨 선물이 없나 하고
우선 자기가 차고 있는 장신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팔찌처럼 손목에 차고 있는 척령향 염주가 눈에 들어왔다.

그 염주는 진가경의 장례식날에 북정왕 수용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아버지 가정에게 맡겨두었다가 얼마 전에 되돌려 받은 물건이었다.

보옥으로서는 존귀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귀중한 물건이었으나 대옥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가 않았다.

보옥이 손목에서 염주를 풀어 대옥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대옥은 감사하게 받기는 커녕 톡 쏘듯이 말했다.

"쓰던 물건을 선물로 줘? 그것도 남자 물건을 여자에게 주다니. 난 갖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 염주를 한쪽으로 휙 던져버리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옥은 크게 모욕이라도 받은 듯한 태도였다.

보옥은 무안하여 얼굴이 벌개질 지경이었다.

내가 얼마나 아끼던 물건을 주는 건데.보옥은 다른 때 같으면 대옥에게
따지고 들었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는 날이라 여겨져 꾹 참았다.

보옥은 염주를 집어 다시 손목에 차며, "왜 저런 쌀쌀맞은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내원 참, 나도 모르겠군" 하며 중얼거렸다.

대옥이 보옥의 선물을 그렇게 취급했으나 보옥은 집에서 대옥을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그저 즐겁기만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