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취미라는 것이 있다면 둘을 생각해볼수 있겠는데 그 하나는 동료
선후배들과 맥주 온도가 적절한 생맥주집에 앉아서 이런저런 연극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고 또 하나는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앞서가는 사람의 발뒤꿈치만 보면서 산에 따라
다니는 일 정도다.

스스로 "참 한심한 취미생활이다"하고 자조할 때가 많다.

업으로 하는 연극 빼놓고는 아는 일, 하는 일이 없다.

그러니 내생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생맥주집 드나드는 일과 시간만 나면
산으로 도망가는 일밖에 달리 일이 없다.

독서라는 것도 한때는 도시락 싸들고 도서관을 방황한 적이 있지만 이제
와서는 잘 되지를 않는다.

셰익스피어 희곡중의 한 줄 문장만도 못한 저 두꺼운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가 하는 오만한 게으름이 또 나를 독서하지 못하게 하는 친구가 돼버린
것 같다.

이때 전한국산악회 이사 김태국 선생님께서 "거북이 산우회" 입회를
추천해 주셨다.

들어가 보니 쟁쟁한 어르신들이 즐비했다.

전대법관 김기총 선생님, 전조달청장 김태승 선생님, 노승두 부장판사님,
이시봉 회장님, 박영대 회장님, 김중환 회장님, 조재군 사장님, 김종호
공인회계사님, 이응찬 선생님, 배정인 선생님, 윤상 선생님등.

나는 그중 막내였다.

모두 나를 반갑게 맞아주셔서 그지없는 영광이었지만 내심 뒤치다꺼리
하려면 고생 좀 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산행을 해보니 30년이 넘는 산행 노하우를 가지고 걸음이
토끼처럼 빨랐다.

가끔 토끼패와 거북이패로 나누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이면 거의 빼지않고 산행을 하시는 이분들이 나는
존경스럽기만 하다.

경조사에 서로 돕고 작은 고민도 서로 나누어 가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1년이 지나니 드디어 후배 하나가 들어왔다.

목재를 취급하는 송태유 사장이다.

하산할때 그의 배낭에서 달랑거리는 쓰레기통은 볼때 마다 "내 일을 저
친구가 하는구나"하고 혼자 웃는다.

산행도 이제 국내산에서 해외로 뻗기시작했다.

작년에는 일본의 북알프스산 남알프스산을 다녀왔고 금년에는 두팀으로
나누어 백두산과 일본 북해도의 대설산을 등정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