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대학시절을 즐기던중 여름방학을 이용해
바닷가에 텐트를 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한 친구 두 친구
포섭하여 모인 경기고 65회 동문이 10명.

몇주간이었던 이집저집, 이다방 저 다방을 이동하며 계획을 세워
부산 근처의 임낭이라는 자그마한 어촌을 찾아 모래 섞인 찌개에
고추장만 듬뿍 풀어 고추장찌개인지, 모래찌개인지를 먹으면서
원시인을 훙내내던 10명의 악동들.

열흘간의 생활은 무척 고생스러웠으나 서울로 돌아와 그 추억을
못 잊어 다시 모여 않아 고생담을 되씹던 자리가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졸업후에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소주집에서 만나던 모임은 하나 둘 가정을 꾸리면
이김없이 찾아가 새색시를 골탕먹이는 가정 모임으로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부인들끼리도 친해져 이제는 참석 인원이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제각기 안정을 찾게 되면서 정기적으로 기금을 조립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세계 여러 곳에 몇명이 흩어져 있던 당시 상황으로는
서로의 연결을 약속하자는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합의가 이루어져
모임의 이름을 임낭회로 정했고 현재 모은 기금도 제법 된다.

지금은 한국화약(주) LA지사에 나가 있는 김관수 이사를 빼고는
모두 한국에 있지만 AIU 이재영 부산지사장, 대덕 한국자원연구소의
참치회를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인다.

모임이 있다면 항상 제일먼저 나와 분위기를 잡는 청량이 정신병원의
장동산 원장, 골프라면 일가견이 있다고 언제든지 원 포인트 레슨
(One Point Lesson)을 자청하는 (주)정식품의 정성수고문, 회사일을
혼자 다 떠맡아 하는지 항상 회사일오 늦어다며 뒤늦게 나타나 술부터
한잔 달라고 하는 (주)기아기공의 정종현 이사, 남자들보다는 부인들에게
더욱 인기가 있는 (주)정식품의 윤석구 이사, 워싱턴에 나가있을 때에도
임낭회 모임을 가장 걱정하던 조일관 심의관, 임낭회 창설 후 완전
타의에 의해서 회장을 맡은후 계속 회장직을 맡긴다고 투덜대면서도
꾸준히 연락을 맡아 하는 두미상사의 오해영 사장등 모두가 임낭바닷가에
쳤던 텐트속에 25년간 우정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