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런던방문중 하이드공원에 아침산책을 갔다가 벤치에서 읽은 글
한토막 "화성대통령 각하. 저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지구에 와 있습니다.
지구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입니다. 다른 별에서는 상상도 못할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지구인들이 지구를 망치고 있습니다. 날로 환경을
파괴하고 엄청난 공해를 발생하여 지구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지구가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바라건대 빨리
화성군대를 파견하여 지구를 정복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무지한 지구인으로
부터 지구를 건져 주십시오"

영국의 전국 고등학생 작문모집에서 일등을 차지한 문장내용의 요약이다.

고등학생의 기발한 착상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한참후 벤치에서 일어서며 혼자 뇌까렸다.

"화성대통령은 부디 한국부터 먼저 정복해 주시지요"

그런데 화성대통령역할을 해주어야 할 이는 실은 문민대통령이요,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이며, 영향력있는 지도층인사이다.

화성의 군대란 바로 환경의 파수꾼노릇을 해야 할 공직자나 시민운동단체
혹은 자원봉사대원이다.

이러한 화성대통령세력이나 화성의 군대들은 냉전이 끝난후의 "또 하나의
전쟁" 즉 환경전쟁을 해야 할 판이다.

냉전후(Post Coldwar)에서 리우후(Post Rio:1992 년의 리우 환경정상회담
후)의 새로운 양상이다.

우선 개념부터 바꾸어야 한다.

발전이란 다음세대에 재앙을 물려주는 곶감빼먹기식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어야 하며, 생산이란 환경파괴적 효율성을
살리는것이 아니라 "환경의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다시 회수하여
재생할 것을 미리 계획한 리사이클링생산이어야 하고, 또한 소비란 쓰고
나서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쓰고난후까지 책임을 지는
리사이클링소비이어야 한다.

유럽여행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개념의 전환이 이미 일상생활
에까지 나타나 생활패턴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름더위는 에어컨으로 쫓는 생활패턴이 아니라 숲과 강과 공기를 더욱
맑게해서 쫓는 생활패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대도시 한가운데의 강과 개울에 물고기가 놀지 않으면 그건 현대도시가
아니다"거나 "아직도 자동차에 에어컨을 달고 다니느냐"거나, "호텔에
에어컨을 달면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거나 "가격이 20~30%쯤 비싸더라도
재생품을 사 쓴다"거나 "공해유발형 제품은 시장에 나올 자격이 없다"거나
하는 식의 가벼운 일상대화가 나오기까지에는 이미 무거운 개념전쟁을 겪은
것이다.

환경문제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공해 "떠 맡기기"(buck passing)
현상이다.

구미는 일본에 공해를 떠맡겼고 일본은 한국 대만등에 떠맡겼고, 다시 한국
대만은 일본과 함께 동남아와 중국에 떠맡겼고, 이제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산성비와 대기오염을 떠맡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중국이 발생시키는 산성비를 문제삼고 있지만 그 책임의
상당한 부분은 중국에 공해산업을 이전시킨 측에 있다.

또 국내적으로도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떠맡기고 서울같은 대도시는 생활
쓰레기를 변두리로 떠맡기고 변두리에서 다시 농촌으로 떠맡기고 강물로
떠맡기고 강물은 다시 바다로 떠맡긴다.

그리고 이제 산과 강과 바다로부터의 "복수"가 시작되고 있고 그것은 다음
세대의 재앙이 될 것이다.

이제 동북아는 세계적인 공업지대로 부상하면서 그이상으로 세계최대의
공해지대로 부상하고 있다.

황해의 사해화가 경고된지 오래다.

발해만 일대가 중국 중화학공업의 중심지가 되고 한국도 공업의 중심지가
동해안에서 서해안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미 황해는 세계의 대오염해로 되어
버렸다.

한반도일대는 사람이 살수없는 공해중심지가 될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와
있다.

공해 "떠맡기기" 게임에서 가장 손해보는 나라는 한국이고 그중에서도
소비자이며 그중에서도 변두리나 농어촌의 가난한 주민들이다.

그들이 국제 공해 "떠맡기기" 게임의 최대희생자이다.

공해떠맡기기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몇가지의 새로운 개념이 필요
하다.

첫째는 환경공간(Enviremmental Space)이란 개념이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공해를 "떠넘기기"에 성공하더라도 얼마안가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니 결국 "누워서 침뱉기"에 불과하다.

"누워서 침뱉기"의 공간이 환경공간이다.

동북아는 하나의 환경공간이다.

이것을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라고도 한다.

동북아 환경공간이 파괴되면 가장 손해보는 측은 그 복판에 있는 한국이고
따라서 한국이 동북아 환경공동체 결성의 주역이 될수 밖에 없다.

둘째는 "우리집 뒤뜰은 안된다"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개념을
"누구의 뒤뜰도 안된다"는 니비(NIEBY: Not In Everybody Backyard)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

흔히 님비현상을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자신도 다른지방의 공해를 떠맡지 않으려고 할것이 뻔한데
누가 다른지방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 붙일수 있는가.

그런 속임수로는 문제해결이 안된다.

쓰레기를 어느 누구의 뒤뜰에도 떠맡길수 없고 자체내에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는 하나의 리사이클링단위요 하나의 환경
공간이다.

셋째는 자원환경기준의 대외적 원칙이다.

일본은 일본의 환경기준을 기업진출지역에 적용해야 하고 한국은 중국이든
북한이든 한국의 환경기준을 진출지역에 적용해야 하고 서울은 동일한
기준을 비서울권에 적용해야 한다.

한국은 좀더 당당하고 적극적인 환경전략을 펴야 하겠다.

선진국측의 "그린라운드"공세에 쫓길것이 아니라 리우환경정상회담에서
세계환경파괴 책임의 75%는 선진국측에 있다는 세계적인 합의에 근거하여
"75% 책임론"을 살릴 필요가 있다.

75% 책임론을 내세우며 선진국의 공적기관 소유환경기술의 적극적인 이전을
요구하고 사적기업의 환경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며 "한국형 그린라운드"
를 추진해야 할것이다.

92년 리우정상회담에서 6년후에 지구환경회의를 속개하기로 했다.

그것을 한국으로 유치함직하다.

"서울정상회담"으로 한국내는 물론 동북아의 "환경전쟁"하며 나아가 세계
환경전쟁의 이니셔티브를 기약할수 있지 않을까.

세계최대의 환경피해국이 세계환경문제의 이니셔티브를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그것이 "축구 월드컵"유치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