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조세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을 통해 내년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대상에서 금융상품의 일부를 제외시키기로 했다가 지난 6일 이를
다시 번복함으로써 금융시장의 혼돈이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는 각종 채권, 양도성예금증서(CD), 기업어음
(CP), 특정금전신탁등 금융상품을 만기전 금융기관에 팔 경우 금융소득
(이자)을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 했었다.

금융권에 머물고 있는 뭉칫돈의 피난처로서 예외를 인정해준 것이다.

그러나 금융실명제의 완결편이라 할수 있는 금융소득 종합과세제도에 많은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금융소득의 대부분이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금융소득 종합과세제도는 명분만 그럴듯할 뿐 알맹이가
없게 될것이라는 비판이 일자 당국은 세법개정안의 핵심내용을 바꿔 예외
인정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잘못된 것은 몇번이든 바로 잡아야 한다.

잘못된걸 바로 잡는 것을 탓할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빚어낸 정부의 정책혼선을 보면서 몇가지 지적해 두지
않을수 없다.

첫째 정책의 수립.발표.집행에 있어서 원칙과 일관성이 결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예외인정을 발표할 때에 충분한 여론수렴과 정책검증 과정을 거쳤을
터인데 발표 닷새만에 이를 뒤집는 것을 보면 정책수립에 철학과 원칙이
있는가를 묻지 않을수 없다.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던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으면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잃는다.

서둘러 정책을 세우고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면 또 다시 바꾸는 모습은
아무래도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이번 경우는 정책시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의 보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둘째 거액의 금융자산이 어디로 움직일 것이냐를 주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외인정이 철회되어 다시 종합과세 대상이 되는 금융상품 규모는 각종
채권류가 125조원, 양도성예금증서 20조원, 기업어음 38조원등 180조원이
넘는다.

종합과세로 세금부담이 늘어날 금융소득자가 세금을 덜내기 위해 합의
차명거래를 하는 사례가 많아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실적으로 합의 차명을 밝히거나 규제할 길도 없다.

금융실명제의 근본취지에 어긋나는 일일뿐이다.

또한 거액의 자금이 증시로 몰릴 것도 예상되지만 금융권을 빠져나가
부동산 기타 투기성 자금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거액자금이 갈곳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권으로부터의 자금이탈이
심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더욱이 정치 사회상황이 바뀔때 투기바람이 불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금융소득 종합과세제가 제도금융권에 머물고 있는 자금이 이탈하지 않도록,
또 그러한 자금이 산업자금으로 흐르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그건 정책의 몫이다.

당장 기업어음의 상품성이 낮아져 기업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