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탄투하 50주년,핵무기의 반인류성이 새삼 회자되는 시기에 자타공칭의
문화대국 프랑스가 세계인의 기대를 외면,핵실험 고집을 꺾지않고 있어서
한 국가 이기심의 무모성을 다시 절감케 한다.

더구나 3일하루 프랑스 여객기 납치와 파리시내의 폭발사건이 겹쳐
발생함으로써 남태평양 무루로아 섬에서의 핵실험의 동반사태가
어디까지 증폭될지 탈냉전시대의 새 불안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핵실험이 이미 실시됐다는 뉴질랜드 해군함정의 추적 소식이 오보로
판명되기는 했지만 아직 시라크정부의 후퇴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적 반발이 이쯤 비등해진 이상은 실험강행으로 얻는 손실이
이익보다 크리라는 판단은 프랑스로서도 내릴 때다.

연전 강화도 고문서의 반환을 둘러싼 그들의 집착에 당혹은 했었어도
고속철협력등 근래 한불관계의 발전을 소중히는 여겨 이에 대한
관심표명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이 이상은 어렵다.

그 찬란한 역사,특유의 민족적 자존심을 염두에 둘때 시라크의 대미
핵열위만회욕구를 예상할 만은 했다.

그러나 핵적 총의에 유독 프랑스가 극단 반발하는 기본논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독일의 침략,2차전이후 미국의 영향아래서 프랑스의 자존심이 일대
상처를 받은 것은 공지의 서실이다.

따라서 무기 항공기 철도 에너지등 여러 부문에서의 우위확보에 힘쓴
역대정부,새시대 독자노선 추구 선거공약을 실천하려는 시라크의 포부를
심정적으로는 이해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공약에도 한계는 있어야 한다.

특히 그것이 인류의 공멸과 환경파괴의 직결된다면 끝내 관철을 고집할
공약이 못된다.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 공사주의등 독재체제라면 빗나갈 개언성도
있다.

그러나 문화 선진국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민주 프랑스라면 안
어울린다.

이미 핵탄원료 생산에 직결된 일본 몬주발전소에 플로토늄을 공급하면서
그도 모자라 자연의 세계적 보고인 청정 해양에다가 반영구의 위해를
가하려 함은 비문명적 소행,그것이다.

중국이 몇주전 지하핵실험을 순간 단행했을때 세계여론을 비등했다.

그뒤방불중인 중국국방상의 핵실험 계속의사가 다시 표명돼 그렇찮아도
동아시아에 집중된 이목이 더욱 경악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른바 핵의 "동중 서불"경향을 동일차원에 놓는다면
프랑스로보나 세계로 보나 너무 무사려하게 대재앙의 씨를 뿌리는
어리석음이다.

그러한 무모는 차후 시간을 갖고 의논하면 기필코 회피될 것이라 믿는다.

핵실험 강행을 호언한 시라크정부로서 후퇴의 명분을 찾는 곤혹이
작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감내해야할 고통과 모험은 더 크다.

인류역사 위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어느 민족-국가보다 위대한 기여를
해온 프랑스,프랑스인들이 이 정도의 난관타개에 능히 양식과 아량을
발휘하리라는 점에 우리는 추호도 의문이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