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 서울산업대총장(63)은 요즘 학계에 있을때 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성연구소를 차려좋고 강연에 열중하고 있다.

강연주제는 주로 ''이도정신''.

그가 강연에 열중하는것은 우리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는것을 안타까워해서이다.

그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붕괴와 같은 최근의 대형참사는 총체적인 가치관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육사를 졸업(11기)한뒤 서울대 문리대에 편입, 서울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육사교수를 거쳐 교수부장(준장)으로 예편했다.

야전군생활을 한번도 해보지 않고 학자군인으로서 별을 단 유일한 사람
이다.

박사학위 논문인 ''민군관계론''은 민간과 군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 당시
정치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환교수를 거쳐 지금의 서원대학교인 청주사범대총장
과 서울산업대총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정치학원론'' ''한민족공동체론'' ''민군관계론'' ''오화랑대''
''청사청사의 편지''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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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이기한 < 산업2부장 > ]]]

-주로 어디로 강의를 나가십니까.

"중앙공무원교육원과 국방대학원 통일연수원등 다양하지요.

요즘은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많이 합니다"

-어떤 내용을 강의하시는지요.

"주된 내용은 이도정신입니다.

이도란 관리의 도리라고 할수 있으며 이의 핵심은 선비정신이지요. 나라가
바로 서려면 관료들이 바로 서야하며 먼저 선비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해방후 우리나라엔 서구 문화가 물밀듯 들어왔습니다. 물질중심의 사고와
효율지상주의등도 이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효율을 추구하다보니 고속성장이 가능했습니다만 대형사건과 사고등
부작용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제 남의 문화로 우리의 가치관을 삼고 행정을 펴는데는 한계에
달했습니다.

우리 전통에서 올바른 정신을 찾아내 새로운 가치관으로 삼아야 할때가
됐다고 봅니다"

-이도정신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이조 5백년을 면면이 흘러온 선비정신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사색당쟁과 구한말의 혼란, 일제강점을 떠올려 이조시대를
무조건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한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은 물론 큰 실책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왕조가 5백여년을 지탱해온 것은 세계 역사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 체제를 지탱해온 근간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좋은 덕목은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간은 바로 선비정신이고 선비의 으뜸은 청백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관료들도 청백리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이조시대, 특히 전반기 2백년동안엔 청백리들이 많이 배출
됐습니다.

이들은 가문의 명예를 중시해 매우 청렴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업무처리도
공명정대했습니다.

공인이 깨끗하고 정대해야 한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신앙과도 같았지요.

이들은 임금의 뜻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전에서 부복한채 "거두어주시
옵소서"를 연발하며 고언을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은 황희정승을 꼽을수 있겠지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이같은 선비정신이 새롭게 부각되는 배경은 무엇인지요.

"박정권 5.6공등 역대정권에서 공무원의 부정부패방지등을 역설했고
문민정부들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문민정부는 깨끗한 정부를 더욱 표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요.

문민정부가 벌이고 있는 "깨끗한 정부" "깨끗한 사회"는 "돈안주고
돈안받기"운동에만 역점을 두고 있는 것 같은 인상입니다.

깨끗한 관리가 되고 깨끗하게 사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철학적
바탕을 제공해야 됩니다.

우리 역사정신에 면면이 흐르고 있는 선비정신을 일깨워 각자 개개인의
명예를 찾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선비정신을 현대에 어떻게 접목시킬수 있습니까.

"우선 공직자들을 선비정신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이들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시켜 정신을 개조해야 합니다.

교육과정에 흐리멍텅한 국민윤리교육을 넣을게 아니라 선비교육 혹은
청백리교육을 시키는게 백번 낫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는 그나라 특유의 지배정신이 있습니다.

일본의 사무라이정신 영국의 젠틀맨십 프랑스의 애타티즘 독일의 융커출신
관료정신 등입니다.

우리나라도 그좋은 선비정신이 있는데 이것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는 선비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며 선비정신말살을 식민지교육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선비정신은 관료에게만 적용되는 정신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기업인 군인정치인등 모든 분야의 사람에게
적용할수 있는 정신 입니다.

예를들어 군인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게 본분이며 이것이 곧 선비정신
입니다.

정치인들은 요즘 표긁어 모으는 기계로 전락했습니다만 이들도 공인의식,
다시말해 선비정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기업인들, 특히 요즘의 중소기업인들은 그야말로 현대적인 의미의
선비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들은 집을 저당잡히면서까지 결사적으로 경제발전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공무원과 군인등 모든 부류의 사람을 통틀어 누가 그들처럼 집을
잡혀가면서까지 나라발전에 헌신하고 있습니까.

중소기업인들은 그런면에서 긍지를 느껴야 합니다.

저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가끔 교육을 합니다만 중소기업인들은 요즘
어깨가 너무 처져있어요"

-기업인들에게 선비정신을 대입하는 것은 아직 잘 납득이 되지 않는데요.
기업은 이윤창출이 목적이고 선비는 청렴이 행동지표가 아닌지요.

"물론 기업은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기업은 정정당당하게 이윤을 창출하고 선비는 정정당당하게 살아간다는
방법에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쪽으로 한번 얘기해 봅시다. 현대는 기업이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엔 정부의 입김과 간섭이 강하지요.
이들중엔 잘못된 것도 있다고 봅니다.

이럴때에도 대부분의 기업은 정부에 대고 노(NO)라고 하지 못합니다.
후환이 두려워서지요.

이제는 기업인들도 정부에 노라고 할것은 과감히 노라고 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직언하는게 바로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는 선비정신입니다"

-선비정신을 현대에 뿌리내리려면 역시 교육이 제대로 돼야한다고
봅니다. 육사교수를 오래하셨고 2개대학의 총장을 지낸 교육자로서 어떤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대학교육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나가면 나라가 망합니다.

입학하면 졸업이 보장되는 대학이 세계에 어디 있습니까. 4년동안
죽어라고 공부해도 국제무대에서 이길까 말까한데 어물쩍 공부해서
되겠습니까.

내생각으론 1학년 학생의 3분의1은 F학점을 주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야 합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배길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수들은 교실에서 강해야 합니다. 정치판을
기웃거리거나 다른 곳에 신경을 쓰면 안됩니다.

학생과 교수 모두 학술적인 압력(academic pressure)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나라를 발전시키는 선비 역할을 할수 있어요"

-서원대학교총장시절 저술한 "청사청사의 편지"가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평소의 느낌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쓴 수필집입니다.

교육의 중요성, 특히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유아교육을 많이 강조했지요.

유태인의 경우 어머니 무릎에서 그들의 역사인 구약성서를 3번이상 듣고
자랍니다. 이들 유태인은 그들의 조상을 탓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조상을 격하하고있습니다. 선비때문에 망했다느니, 잘못된
임금을 만나 망했다느니 하는식으로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고 있습니다.

요즘 TV에서도 우리의 왕을 궁녀들하고 놀아나는 모습으로만 비추고있어요.
이는 잘못된 일본사관에 의한 역사교육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
또는 뿌리를 빨리 되찾아야 합니다"

-서재에 있는 이들 문집은 무엇입니까. (이박사의 서재엔 붓글씨로
씌어진 문집이 70권이나 꽂혀 있다)

"전뇌기라고 부릅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기전에 맑은 정신으로
쓴 글이란 뜻입니다. 일기형식의 글을 수십년동안 써오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이 난중일기를 썼던 심정으로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바로
세울수 있을 것인지를 일기형태로 써오고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시간이 나면 서울 통의동에 있는 황학정을 찾아 국궁을 즐깁니다.

정신을 한곳으로 모아 시위를 당기면 심신의 피로를 한껏 잊을 수가
있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목표를 정확히 맞힐땐 날아갈듯이 기쁘지요. 또 시간
이 나면 서예를 즐기고 있지요"

-한마디로 선비같은 생활을 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감사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