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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대내외적 개방화와 자율화가 급속도로 진전됨에 따라 이에
맞는 새로운 정부의 역할이 요청되고 있다.

특히 3권분립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정부 기능이 행정부에
집중돼 있는 현 시스템으로는 개방화 세계화시대에 부응하는 규제완화작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은 29일 개방화와 자율화의 진전에 따른 시장경제
체제창달을 위한 새로운 정부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 제 1회 자유주의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시장경제와 법치주의를 위한 정부 3부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해외 석학들의 주제발표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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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시장의 속성 ]]]

고든 털럭 <미 애리조나대 석좌교수/정치경제학>

전세계적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운용시스템( government owned
economy )에 대한 신뢰는 거의 사라졌다.

미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관주도"에 대한 실망이 곧바로 민간자율의 시장기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나 애착,또는 헌신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탐욕"이라는 인식을 떨치지
않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많은 지식인들은 "훨씬 더 완곡한 형태의 통제( much more
moderate version of control )"라는 "접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경제를 전적으로 시장기능에만 맡기는데 반대하는 지식인들은 "시장주도"
라는 대세에 밀려 한걸음 물러서기는 했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기업들이
"탐욕스런 존재"라는 사시와 의구심을 여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지식인들의 시각은 어떤 측면에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탐욕적이고 재능이 많은 사람이 시장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시장메커니즘의 기본 전제로 인정되어야 하는 게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탐욕"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기심"은 시장을
움직이는 사업가들만이 아니라 정치를 주무르는 사람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미국 하원의원들의 이기심이 사업가들의 그것보다 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하원의원들은 빈곤과는 거리가 멀지만 결코 높은 보수를 받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하원의원들이 봉급을 더 많이 올려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탐욕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다.

행여나 세비를 올렸다간 유권자인 국민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 "일자리"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가나 국회의원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고 볼 수는 없다.

누구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얼마만큼의 이타심과 자비심이 전혀
없지는 않다.

본인은 이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소득중 5% 정도는 가난한 사람에게
기꺼이 주려고 한다"는 "5% 가설"로 설명한 바 있다.

이 가설은 정치인과 기업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동기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다.

딱히 어느 쪽이 더 탐욕스럽다고 꼬집어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건 국회의원들이 사업가보다 지킬 의사가 없는 "공약"을
남발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사업가보다 덜 도덕적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치인쪽이 사업가에 비해 "고객"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조건이
훨씬 느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차를 구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투표를 할
경우 자신의 한표가 국회의원의 당락에 매우 적은 영향만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에 의해 형성되는 정치시장은 경제시장과 유사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경제시장보다 덜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그 중 실제로 이들이 혜택을 입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만일 우리가 소득의 5% 정도를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보다
국내의 컬러 TV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기를 원한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요컨대 시장이 탐욕스럽다고 비난하면서 정치인을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은
스스로도 그에 못지않게 탐욕스럽다는 점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며, 그것이
바로 잘못된 자원배분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활동의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에게 특별한 도움이 되지 않는 대규모의
프로그램에만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지급할 준비가 돼 있는 범위내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 프로그램을 고안한다면 이는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