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혜 <서울시립무용단 단장>

1년에 몇백편에 가까운 많은 공연이 이뤄지고 있지만 과연 없어서는
안될 가치있는 공연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왜 필요 없는 공연이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와야만 하고, 그런 공연을
우리는 지켜보아야 하는지.

사실은 발전하고 있는지조차 확신못하면서 발전하는척 말할때 내 가슴은
뜨끔 뜨끔해지곤 한다.

실은 나부터 각성해야 한다.

모든 가치성이 세계화에 발맞추어 나가는 이 시대에 유독 무용계만이
전시대적인 폐습을 버리지 못하고 고전하는듯 하여 가슴 아프다.

대부분의 무용공연장은 출연진과 연관된 관객,객관성 보다 가족적인 애정
혹은 안면때문에 찾아 오는 관객들로 채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용을 정말로 보고 싶어서 공연장 앞에서 티켓을 사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에 한번인 결혼식이라면 예의로 혹은 애정으로 정답게 참관해 줄수도
있겠지만 1년에 한두번의 정기공연을 치러야 하는 직업 무용단의 경우 그런
예는 통하지 않는다.

직업무용단부터 시정해 나가야 한다.

관객의 수준 보다 머리수에 급급하면서 유료 무료를 막론하고 객석을
채워만 주어도 고맙다는 허위적인 성과의 공연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같은 생각을 이번 "서울 까치"공연부터 실행하기로 결정했었다.

폐습이란 것을 알면서도 막상 개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연을 마련하는 시립단체는 공연이 끝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질보다는 많은 관객을 동원했느냐 여부로 성패를 따진다.

따라서 공연의 성과는 수에 비례하는것이 관례가 되어있다.

이유를 불문하고 막을 올리면서 조마 조마 했다.

초대를 대폭 줄이고 과감히 유료관객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을 하고도
자신은 전혀 없었다.

2명이나 3명만이라도 좋다.

질책을 받아도 좋다.

공연의 질만 높아 진다면, 2~3명이라도 만족하게 보고 갈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이번 공연은 성공이라고 다짐하면서 막을 열었다.

전문단체로서 갖추어야할 위상과 면모는 질에 있는것이지 허황된
실적위주의 공연횟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3명만이라도 보고 신뢰하고 무용의 진정한 팬이 되었을때 무용 관객의
저변확대는 이뤄지는 것이다.

1회성에 성공을 거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모든 무용전문가들이 책임질때
유료 관객은 확보될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무대를 만드는 전문가는 무대를 책임지고 관객을 다시 찾게
하는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2~3명을 진정 만족시켰을 때 보다 많은 국내 팬을 확보할 수 있고 나아가
세계적 수준의 무용단이 될수 있다는 신념으로 진실하게 무대를 만드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었다.

외국공연때면 항상 단원들에게 아끼지 않고 선물하는 것이 있다.

선진국의 공연물을 관람시키는 일이다.

티켓값이 얼마인가에 구애받지 않는다.

선진국의 유명하다는 단체의 수준을 보고 우리도 그 수준에 가깝도록
노력하고 똑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보자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아깝지않다.

우리나라같이 공짜로 보여주고 서로 책임지지 않는 행위 보다 고가의
티켓을 팔고 서로 책임지는 행위,그런 풍토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책임지는 과감한 개혁은 역사를 바꾸어 놓을수 있고 역사를 재창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 보면서 책임지는 무용인이 될수있도록 남몰래
채찍질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