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에서 분산으로, 외연에서 내포로"

국내 기업들이 "분산"과 "내포"를 2개의 키워드로 삼아 해외진출을
고도화해 나가고 있다.

단순히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집중)하거나 현지에서 물건을 판매(외연)
하는데서 벗어나 생산과 마케팅체제에 질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핵심은 역시 사람이다.

본사 인력을 해외 사업거점에 투입하는 것을 1단계 분산, 현지인력을 대거
채용해 "현지화"를 꾀하는 것을 2단계 분산이라고 한다면 요즘 기업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인력의 복합 글로벌화"는 차원을 달리하는 인력 분산
전략의 완결판이라고 할수있다.

해외각국의 사업장에 본사인력도, 현지인도 아닌 제3국인력을 투입하면서
세계화의 포인트를 본사만이 아닌 각 해외 거점 단위로 분산하고 있어서다.

이런 방식의 인력 분산전략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으론 삼성전관이 꼽힌다.

이 회사는 그룹계열사인 삼성코닝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공장에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인근 국가들의 인력을 대거
들여다 투입키로 했다.

현재 4천2백명인 공장 종업원을 라인 확장등에 따라 올 연말까지 무려
7천명선으로 일시에 대폭 늘려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긴 하다.

그러나 동남아시장에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키 위해서는 "다국적 종업원
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더 초점을 맞춘데 따른 것이란게 회사측 설명이다.

"제 3국의 종업원을 고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모자라는 인력을 수혈받는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지 공장과 제 3국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말레이시아공장의 세계화를 이루는 발판을 확보한다는데 더 큰 뜻이 있다"
(삼성전관 박근희경영기획담당이사).

삼성이 최근 브라질에 브라운관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인력
투입 전략은 더욱 공격적이다.

독일 공장에서 채용한 현지 설비전문가 10명을 브라질에 발령내기로 한 것.

이들 독일기술자들은 브라질 발령을 전제로 6개월간의 "재교육"을 받기
위해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다.

삼성은 해외공장의 현지 채용인을 다른 국가의 생산법인에 주재원으로
대거 파견하는 또다른 기록을 세우는 셈이다.

국내 기업들이 이런 "인력 분산화"와 함께 최근 부쩍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해외 사업거점의 "내포적 현지화"다.

세계 곳곳의 사업거점에 대해 현지인들로부터 외국기업이 아닌 "우리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자는 전략에서다.

LG전자는 최근 영국법인장을 현지인으로 채용키로 결정했다.

이에앞서 선경은 지난 93년 뉴욕에 있는 미국본사의 사장을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임명했다.

"현지인들의 생활문화와 사고방식에 맞는 경영을 하지 못하면 해외마케팅과
생산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구자홍LG전자 사장)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올해초 미국 남아공 스페인 등 3개국 법인장을 현지인으로
임명했다.

올해말까지는 영국 이탈리아 브라질 등의 법인장도 현지인으로 바꿀 계획
이다.

삼성의 경우 이같은 단순한 인력운영의 "개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이트 크리에이션(Site Creation)"이라는 "혁명"까지도 꿈꾸고 있다.

사이트 크리에이션은 해외 거점의 운영방식까지도 현지 문화에 맞게 뜯어
고치자는 것.

삼성의 전자.전관.전기.코닝 등 "전자 소그룹"은 그 첫 대상으로 멕시코
복합단지를 선정하고 구체적인 그림그리기에 들어갔다.

우선 공장의 외관 자체를 "멕시코풍"으로 한다는 구상이다.

예컨대 공장 외벽에 칠할 색채부터 단지내에 심어질 나무의 종류와 위치
간격 등을 "멕시코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게끔" 세심하게 선정하고
있다.

단지 진입로에 걸려있는 안내판도 현지인들의 정서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바꿀 방침이다.

이런 사이트 크리에이션은 IBM 모토롤라 등 외국계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새로운 세계화 패턴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한국IBM의 경우 국내 매체광고를 통해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문화
되살리기"같은 공익캠페인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 소년소녀 가장돕기등
"한국적 부조운동"에까지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이같은 "뉴 세계화 트렌드"는 생산.물류.판매 등 경영의 하류부분만을
해외로 이전하는 초보 단계에 머물러온 국내 기업들의 세계화가 인사.노무.
금융.구매(조달)등 상류부문으로 본격 점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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