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없는 공장"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공장".

창원소재 자동차부품업체인 창원기화기가 "삶의 질을 높인다"는
기업이념의 구현을 위해 가장 중시하는 실천항목이다.

이공장에는 과연 비밀이라곤 없다.

구내식당 안내판은 각종 정보들로 가득하다.

생산 판매실적등 영업현황은 물론 사원회식비 경조비지출 내용까지도
상세히 적혀있다.

외부인사가 공장을 둘러보고 가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내방해 무슨말을
했는지조차 기록한다.

그야말로 모든 정보를 공개해 근로자들이 한치의 궁금증도 갖지않도록
하고 있다.

이회사에서는 직장이 곧 가정이다.

개인사정과 집안사정은 곧 회사사정이다.

정부영생산부장(공장장)과 신세진총무과장(노무담당)은 회사안팎으로
많은 신경을 쓴다.

지난 1월 제조2과 직원이 조모상을 당했을때 신과장은 직원 3명과 함께
전화번호만 들고 폭설의 산길을 9시간동안 운전끝에 강원도 원덕읍에 도착,
문상을 하고 돌아왔다.

4월에는 모친이 와병중인 제조1과 사우가 지병인 무릅관절염으로 수술을
받고 휴직하자 정부장과 신과장은 그의 가정을 방문해 회사및 사원들이
모금한 생활보조금을 손수 전달하며 위로했다.

학업중 취업한 근로자들의 졸업식에도 꼭꼭 참석해 꽃다발과 선물을
건넸다.

올들어 5월까지 37건의 경조사에 모두 참석해 한가족으로서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이같이 가족회사로 자리잡게 된 것은 대구및 창원공장의 총책임자인
김일태상무의 남다른 노력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김상무는 노사분규가 한창이던 지난 87년 부임한 이후 노사관계 안정이
기업성장의 관건임을 깨닫고 근로자들의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데 온힘을
다했다.

당시 창원공단에 연대파업바람이 불면서 창원기화기 근로자들도 9일간의
격렬한 분규에 휩쓸렸다.

아무런 이슈도 주장도 없이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가담했던 것이다.

이바람에 생산차질이 생겼음은 물론 이후 수출의 길이 막히는 불이익도
초래됐다.

창원기화기 근로자들의 분규장면이 외지에 실리면서 이를 본 바이어들이
불안을 느껴 주문을 취소하는 예상치못했던 후유증이 뒤따랐다.

이회사는 이듬해부터 노사분규로 훼손된 신뢰 회복에 역점을 두고
사원교육을 강화했다.

연간 한마음교육 2회, 국내저명인사 초청강연 2회, 일본기업체견학,
점심시간을 활용한 VTR강좌, 통근버스내 강연방송실시 등 사원의식향상을
위한 교육투자를 아끼지않았다.

93년말에는 기업을 공개,종업원들에게 주식으로 돌려줬다.

정부장은 "근로자들이 신바람나게 일할수만 있다면 어떤 방안이든 과감히
실행하고 있다"며 종업원들의 휴식과 스트레스해소를 위해 공장지하에
"놀이방"겸 "바"를 만들 작정이라고 말했다.

노조도 회사못지 않게 생산.협력적 노사관계형성을 위해 애쓰고 있다.

87년 분규이후 무리한 요구나 무모한 행동을 결코 하지않고 있다.

93년11월부터는 사측과 함께 개선모임을 조직, "기본질서를 지킵시다"라는
슬로건아래 복장 정리 예의 시간등을 준수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사는 이같은 협력분위기에 힘입어 올해 단체협상을 지난 6월 조기에
종결지었다.

제안제도를 통해 생산라인의 레이아웃을 대대적으로 개선,작업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일할수 있게했다.

공정 청소도구 작업배치 사무행정등의 표준화를 이뤄 누구나 쉽게 환경에
적응토록 했다.

또 전사적으로 절약운동을 벌여 매년 30%이상의 절전 절수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사원 근로손실일수를 70일로 85%나 줄이고 폐기물처리비용도
1천만원으로 절반정도 감축했다.

노조전임자들도 하루 몇시간씩 현장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일을 한다.

김성철노조위원장은 "일본기업체 견학을 통해 그곳 노조위원장들이
기름범벅이 된 장갑을 끼고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조합일이 없는데도 일을 안하는 것은 근로자들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말한다.

각부서단위로 분기별회식, 매달 생일자합동파티, 춘계체육대회 및
추계야유회, 연말 노사화합대축제등을 몇년째 지속하면서 이회사노사는 이제
확고한 동반자관계를 구축했다.

노사협력은 곧 매출급신장으로 이어졌다.

10년전 8억5천만원에 불과했던 이회사의 매출액은 지난해 6백70억원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중 종업원수도 74명에서 6백10명으로 증가했다.

창원기화기 노사는 "우리는 남이아닌 한가족"이란 기업이념아래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 창원=문병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