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물론 유럽대륙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표시중 하나가 노란색 조개
껍데기다.

시내중심가는 물론 주택가 한적한 곳이면 으레 존재하는 주유소엔 노란색
조개껍데기가 선명하다.

한 밤에 길을 잃은 운전자들은 이 표시만 보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노란색 조개껍데기.

이는 유럽 최대기업이자 세계 7대 석유메이저중 으뜸인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그룹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흔히 셸로 통칭되는 이 회사는 세계 원유및 가스의 약10%를 생산하는 세계
10대 화학그룹가운데 하나다.

6백억달러를 넘어선 셸의 주식싯가총액은 세계에서 일본전신전화(NTT)다음
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기업규모는 홍콩이나 오스트리아의 전체 경제규모와 맞먹을 정도다.

뿐만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지가 지난 82년부터 선정하는 "유럽5백대기업(FT500)"
에선 지금까지 한번도 빼지않고 줄곧 수위를 차지해 왔다.

파이낸셜타임지는 금세기는 물론 21세기초반까지도 셸이 적어도 유럽에선
선두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기업이 명멸해가는 상황에서 셸그룹만 유독 "항존하는
기업"으로 존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대한 답은 여러가지다.

셸의 주력인 석유나 가스가 적어도 21세기초반까지는 지구촌의 주요
에너지자원으로 군림할 것이란게 첫번째다.

수요가 있는한 석유탐사에서부터 채굴 정제 운송 판매까지 담당하는 셸의
생명력은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또 셸이 가진 우수한 기술력과 거미줄같은 판매망도 셸의 장수를 점치는
한 원인이다.

실제 셸의 석유탐사비용은 배럴당 평균 2.5달러로 유럽석유회사들의 3.58
달러나 미국메이저들의 3.97달러보다 훨씬 낮을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
(미국 리먼브러더스사조사).

세계 1백30개국에 상표등록이 돼있고 2천여개의 판매회사를 가졌을 정도로
인지도나 판매망도 셸을 따라올 메이저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셸의 끊임없는 변신노력이다.

세계경제흐름과 경영신조류를 남보다 빨리 체득,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게
셸의 근본적인 생명력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우리는 절대 자만하지 않는다.

유가파동등 어려울 때는 물론이고 지난해와 같이 60억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남겼을 때도 항상 미래에 대비하려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2등으로 전락하고 2등전락은 곧 쇄락을 길로 접어들었다는걸
뜻하기 때문이다"(한스블레밍 전략기획부장) 우선 조직변화부터가 그렇다.

셸의 기업문화는 "화합과 조화"를 특징으로 한다.

로열더치셸은 지난 1907년 영국의 셸운송무역회사(지분율 40%)와 네덜란드
의 로열더치석유회사(지분율 60%)의 합병으로 생겨났다.

이런 특성상 셸의 조직은 철저히 화합과 조화를 근거로 짜여졌다.

행여 불거져 나올지도 모를 불협화음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유명한 "3차원 메트릭스조직"과 "위원회문화"가 대표적이다.

3차원 메트릭스조직은 <>재무 정보 자원 기획등의 기능별 <>유럽 동유럽
아시아 북미등의 지역별 <>석유 가스 화학 석탄등의 사업별로 3분화된 조직
을 가리킨다.

이 3개의 관리조직밑에 2천여개의 영업회사(Operating Company)가 1백30
여국에 존재한다.

이들 영업회사들은 3개의 관리조직 모두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한가지 사업을 벌이면 동시에 3개의 관리조직에 보고해야하는건 물론이다.

수백개가 존재하는 위원회조직은 특정 프로젝트에 대해 의견을 모으기 위한
일종의 방계조직이다.

셸은 이런 조직을 35년동안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전세계의 영업회사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왔다.

그러나 셸은 매킨지사의 경영평가를 토대로 오는 10월부터 3차원메트릭스
조직을 포기하고 각종 위원회를 해산키로 결정했다.

의사결정지연과 관료조직화등의 역기능을 미리 제거해보자는 의도에서다.

이에따라 3차원 매트릭스조직은 사업중심으로 재편된다.

사업부문이 중시되는 반면 지역과 기능부문은 지원부서로 위상이 낮아진다.

헤이그와 런던의 서비스회사에서 일하는 3천9백명중 1천2백명은 사업부서
로 재배치된다.

협력중시의 기업문화도 신속중시로 바뀔 전망이다.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보다 36%증가한 62억달러에 달하고 자본수익률도
10.4%를 기록하는등 경영상태는 꽤 괜찮았다.

그렇지만 경쟁이 격화되는 경영환경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선 조직개편이
불가피했다"(코 헤르크슈트뢰터회장).

미래에 대비하기위해 지금까지의 존립기반조차 과감히 수정키로 했다는
얘기다.

비단 조직만이 아니다.

사업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셸은 평소엔 안정과 수익을 중시한다.

셸의 유전개발 성공률이 높은 것도 가급적 모험을 삼가는 이런 풍토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셸은 사업환경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역으로 공격적 경영으로 난국을
타개해 왔다.

86년 유가폭락기의 과감한 투자가 대표적이다.

다른 메이저들이 저유가에 대비, 군살빼기에 바쁠때 셸은 오히려 수십개의
조인트벤처를 새로 설립했다.

그해 투자지출비도 전년보다 30%정도 증가한 80억달러에 달했다.

이 결과 셸은 저유가시대인 요즘 풍요를 구가할수 있다는게 업계의 평가다.

셸이 상황에 맞게 취하는 전략적 제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에너지사업의 특성상 전략적 제휴는 불가피한게 사실이다.

그러나 셸의 전략적 제휴가 눈길을 끄는 것은 "적과의 동침"도 서슴치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20년대말부터 70년대중반까지는 경쟁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움(BP)과
판매제휴를 맺어왔다.

셸이 최대 라이벌로 여기고 있는 미국의 엑슨(Exxon)과는 네덜란드 영국
북해 독일 중국등지에서 공동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사업의 경우 역시 경쟁사인 일본의 미쯔비시상사나
미쓰이상사와 합작으로 조인트벤처를 운영중이다.

세계 최고기업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수십년동안 유지해왔던
조직마저도 과감히 바꾸고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셸그룹.

때론 석유메이저의 횡포로 우리나라와 같은 비산유국으로부터 곱지 않은
눈길을 받아야 하는 셸의 이런 변신노력의 기저엔 "셸은 신뢰할수 있다
(You can be sure of Shell)"는 광고문안을 현실화해야겠다는 의지가 짙게
배어있다.

그리고 그 노력의 종착점은 석유와 가스를 대체할수 있는 에너지를 먼저
개발, 지구촌의 대체에너지공급회사가 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5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