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부품업체 롬사의 사토 겐이치로(64) 사장은 "실패한
피아니스트,성공한 기업인"이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려 했던 젊은날의 꿈은 포기했지만 음악가
지망생다운 섬세한 통찰력을 발휘,난국을 대비함으로써 엔고와 디플레로
일본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요즘 각광받고 있다.

사토는 리쓰메이(립명)대 이공학부 출신이다.

대학시절엔 실험실에 박혀 지내기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길 더
좋아했다.

그러나 중요한 피아노경연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서 피아니스트가
되려던 꿈을 포기하게 됐다.

사토는 대학시절 재미삼아 소형 저항기를 개발했다.

물론 이것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지 4년후인 58년 그는 이 저항기를 상품화하기 위해
고등학생시절 단짝인 후지와라 유기가쓰(현부사장)와 함께 롬사를
설립,기업인으로 변신했다.

롬의 생산품은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기 프린트헤드 콘덴서 등이다.

교토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 3월 끝난 94회계연도중 28억
달러의 매출에 2억6,700만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매출액이익률 17%는 일본 전자업계 평균인 4%보다 월등히
높았다.

롬이 이같이 놀라운 실적을 올릴수 있었던 것은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사토사장이 마치 음악가가 선율의 사소한 이상을 감지하듯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이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롬이 대대적인 리스트럭처링(사업구조조정)을 시작한 것은 일본
산업계가 호황의 단맛에 흠뻑 빠져 있던 지난 90년 여름이었다.

당시에도 롬의 매출은 신장세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토사장은 먼곳에서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고 판단했다.

순익률 하락도 징후 가운데 하나였다.

순익률이 아직 전자업계 평균보다 높은 2%대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불안감을 느꼈다.

사토사장은 우선 영업사원들에게 채산성 없는 주문은 받아오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일부 투자계획을 보류했으며 집적회로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했다.

조직도 개편했으며 인원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마찰도 많았다.

여섯명의 간부가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사원들은 4년쯤 지나서야 사토사장의 판단이 옳았다고 인정하게 됐다.

리스트럭처링을 시작할 당시 달러당 140엔이던 환율이 94년 100엔 아래로
떨어지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일본 산업계는 심각한 곤경에 빠졌다.

그런데도 롬의 경영실적은 오히려 호전돼 94회계연도의 경우 매출은
전년대비 21% 급증했고 4년전 2%대에 머물던 순익률은 9%대로 높아졌다.

사토사장의 예지력은 지난 71년 일본기업으로는 처음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할 때도 유감없이 입증됐다.

중소기업에 불과한 롬이 일찌감치 실리콘밸리의 기업에 투자,선진기술
확보에 나섰던 것이다.

사토사장은 기업인으로 성공한 지금 "가지 않은 길"을 뒤돌아보곤
한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피아니스트가 되려 했던 젊은날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롬음악재단을 설립,음악가 지망생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식지 않는 음악 열정을 대변해준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4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