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초 미국 유럽 동남아 중국을 잇는 4극 생산체제를 구축
하겠다며 발표한 "미국 반도체생산기지 프로젝트"가 자꾸만 미뤄지고 있다.

후발주자인 현대전자가 미 오리건주에 64메가D램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지가 2개월이 됐는데도 선발메이커인 삼성의 미국 프로젝트는 말만
무성한채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것.

방침만 세워 놨지 아웃 푸트(out put)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왜일까.

삼성은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부지 선정등 실무적인 문제 때문"이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이유없는 늑장"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진짜 이유"를 놓고 이런저런 분석이 무성하다.

분석은 크게 두갈래 방향.

최근 정부와 삼성간의 기류가 심상치 않아지면서 "몸조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게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기왕지사 현대에 기선을 제압당한만큼 "실무적인 전략"을
꼼꼼히 챙겨 재역전타를 날리려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리고 있다는 분석.

우선 "몸조심론"부터 들여다보자.

몸조심론의 논거는 이건희회장의 북경발언에서 비롯한다.

북경발언 이후 정부와 불편한 관계속에서 미국 프로젝트를 발표하면 괜히
뉴스 스포트라이트만 받을 뿐이라는게 삼성자체의 판단이라는것.

프로젝트 발표가 관계개선에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만 가져올게 뻔해 발표를
늦추고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이같은 관측을 하고있는 사람들은 삼성이 반도체 공장건설 최종
계획을 곧 발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통령의 방미기간인 이달말께 최종계획을 공개할 것이란게 이들의
"확신"이다.

정부가 미국에 건네줄 선물보따리로 "미국 반도체생산 프로젝트"를 풀어
놓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 방미기간중 정부의 체면을 세워줌으로써 그동안의 "불편
했던 관계"를 조금이라도 희석시켜 보자는 전략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차별화론"은 최근들어 최종 프로젝트의 밑그림이 희미하게나마 비쳐지면서
나온 분석.

삼성은 미국 반도체 공장을 단독 투자가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기업과의
합작으로 하고, 생산품목도 차세대 제품인 64메가D램이 아닌 16메가D램으로
한다는 방침으로 선회하면서 이를 검토하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

현대가 64메가D램으로 "장기승부"를 택했다면 삼성은 16메가D램으로
"현실적접근"을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제품차별화와 관련, L반도체의 Y이사는 "삼성이 16메가D램을 생산키로
했다면 그것은 매우 적극적인 시장진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16메가D램은 내년 상반기부터 세계시장에서 4메가D램을 완전히 대체해
주력상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기 때문.

삼성이 만약 16메가D램으로 생산제품을 굳혔다면 연내에 공장을 착공해
늦어도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장형성 시점에 맞춰 제품을 쏟아내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전략은 "미국 반도체공장을 대미 공급물량의 40%를 생산할수 있는
규모로 운영하겠다"는 그동안 삼성측이 설명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삼성은 또 미 반도체공장을 합작형태로 건설키로 했다는 얘기도 업계에
파다하다.

우선은 16메가D램부터 생산하지만 궁극적으로 64메가D램 이후 제품도
생산해야 하는 만큼 "불투명한 시장상황"에 대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란 분석.

시장이 하향세를 그릴 경우 막대한 투자금액을 제대로 건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다 정부는 대형 해외투자에 대해 일정비율의 자기자본을 가지고
나가라는 "행정지도"를 적극화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난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합작투자 방식을 적극 검토중
이라는 전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삼성이고 보면 일종의 투자리스크 분산을
위한 안전장치로 합작공장을 건설한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실제로 미국 신문의 한 도쿄주재 특파원은 최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삼성이 일본 도시바사 혹은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러지사나 인텔사 등을
대상으로 합작협상을 진행중이라는데 사실인가"고 물어오기도 했다.

이 특파원은 "합작비율은 삼성 70%, 합작선 30%라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확인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삼성의 투자지체에 대한 궁금증은 상당부분 풀리는 셈이다.

남은 궁금증은 투자대상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점.

생산인력 확보에 유리한 오리건주에 지을 것이냐, 아니면 기후와 기술개발
여건이 좋은 텍사스주로 할 것이냐.

두곳 다 일장일단이 있어 이회장의 "낙점"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아무튼 삼성의 미국 프로젝트는 몸조심론을 내세우는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달말이면 뚜껑이 열린다.

최근 중국에 비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착공한데 이어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이 확정되면 삼성의 "해외행군"은 가속이 붙을게 분명하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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