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인이 학숙으로 가는 보옥을 일일이 챙겨주며 얼핏 눈가에 눈물을
비쳤다.

"습인아, 내 걱정은 말어. 나도 밖에 나가면 어른스럽게 처신한다구.
내가 없다고 습인이 너 방안에만 박혀 있지 말고 대옥 아씨한테도 자주
찾아가고 그래. 알았지?"

정말 보옥이 어른스럽게 습인을 타이르고 있었다.

습인은 보옥이 새삼 대견스럽게 여겨져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옥은 할머니 대부인과 아버지 가정대감과 어머니 왕부인에게 차례로
인사를 한 후, 청문과 사월이 같은 시녀들에게도 몇마디 당부를 하고는
다시 대부인의 거처로 갔다.

거기서 진업의 아들 진종을 만나서 함께 학숙으로 가기로 약속한
것이었다.

보옥은 진종과 함께 학숙으로 가려고 하다가 대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대옥의 방으로 갔다.

마침 대옥은 창가의 경대앞에 앉아 머리를 빗으며 화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옥 누이, 나 오늘부터 학숙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어"

대옥이 손에 빗을 든 채로 환하게 웃으며 보옥을 돌아보았다.

"그래요? 잘 됐네요. 그럼 멀지않아 월궁에 가서 계수나무를 꺾게
되겠네요"

월궁의 계수나무를 꺾는다는 말은 과거에 급제한다는 속담인 셈이었다.

옛날 진나라 극선이라는 사람이 과거에 급제하자 자기를 계수나무에
비유하여 자랑한 데서 유래된 속담이었다.

극선과 같은 수재들과 겨루어 이겨야 했으므로 계수나무를 꺾는다는
말이 나온 모양이었다.

이렇게 속담으로 말을 받은 것으로 보아 대옥은 은근히 과거제도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하긴 보옥 역시 과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므로 대옥의 말에서
꼬투리를 잡지는 않았다.

"대옥 누이, 저녁밥은 내가 학숙에서 돌아오고 나서 같이 먹자구.
연지분도 같이 만들고"

대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잘 다녀오세요. 나는 화장중이라 바래다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보채 언니한테는 인사하러 안가요?"

대옥의 표정이 새초롬해지는 것을 눈치챈 보옥은 그저 피식 웃기만
하였다.

그리고는 보채에게는 들르지도 않고 진종과 함께 학숙으로 곧장
향하였다.

"대옥 아씨가 보옥 도련님을 좋아하나봐요"

진종이 넌지시 말하자 보옥은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않고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