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고문헌을 종합해 보면 배꼽아래 한 치 세 푼 되는 곳에 있다는
단전에 기를 모으는 도교식 수련에 성공했던 최초의 한국인은 신라때 최승우
김가기 자혜(의상대사)였다고 한다.

이들은 당나라에 유학갔다가 이 수련법을 전수받아 김단을 이룩하고 돌아온
첫 도사들이었던 셈이다.

이들의 도맥을 가장 분명하게 계승한 인물이 한국단학의 비조로 꼽치는
최치원이고 그뒤 희미했던 도맥을 이어 발전시킨 인물이 중시조격인 김시습
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법유손 정희량 윤군평 남궁두등이 이어간다.

신선이 되려했다기 보다는 수련을 통해 건강비법을 익혀 장생불노를 이루려
했던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인지 이들이 신통력을 보여준 방술의 구체적
내용은 전하는 것이 흔치 않다.

예를 들면 김가기는 당나라에 있을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승천했고 김시습
도 죽은뒤 묘를 파보니 시신이 없어졌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 올 뿐이다.

조선후기에 오면 도술에 능한 도사들의 이야기가 "어우야담" "오산설림"
"지봉유설" "청장관전서"등에 더러 실려있으나 내용은 소설처럼 황당무계한
것들이다.

새끼줄을 하늘에까지 올리고 동자를 올려보내 천도를 따오게 했으나 상제의
노여움을 산 동자가 사지가 찢긴채 땅에 떨어지자 그것을 이어붙여 되살려
냈다는 술사전우치이야기가 대표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 천신만고의 오랜 수련끝에 김단을 이루었으나 빨리 도술을 보여주려다
신선이 되는 것에 실패한 남궁두의 이야기도 있다.

모두 믿기 어려운 허무맹랑한 도사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한국 역사상 단 한번도 정통사상이나 종교로 인정받은 적은
없으면서도 도교의 건강비법인 양생법이 받아들여지고 수련법이 이용된 것은
그 깊은 뿌리때문인지 모른다.

도술같은 것은 이단시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유고의 거봉인 퇴계나 율곡
도 양생법과 단전호흡등의 수련볍을 받아들여 건강유지수단으로 활용했으니
말이다.

최근 20여년간 단학수련을 해왔다는 한 교수가 삼풍백화점참사 현장의
생존자수및 매몰장소를 미리 맞췄다고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노수여 한사람도 예측이 정확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보도되자 행여나 뒤질세라 역술인들도 현장을 찾아와 한국
이 예부터 도사의 나라였음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오랜 수련을 통한 종교체험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단지 조선시대도사 남궁두처럼 그들의 적공이 순식간에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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