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서너 차례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고 하더니 가서가
헛소리를 하며 숨이 넘어갔다.

"내 목에 쇠사슬을 채우다니.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거울, 거울을
가지고 가게 해줘" 목이 답답한지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부르짖다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 동안 사람들은 가서가 거울을 손에 쥐고 보다가 기운이 없어 몇번
떨어뜨리는가 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다시 거울을 집어 가서의 손에
쥐어주곤 하였는데, 이번에 보니 아예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아이구, 아이구"

가대유 부부가 손자 가서의 죽음을 애통해하였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것도 억울한데 스무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뜨다니.

가대유는 도사가 준 거울이 아무래도 요사를 부린 것 같아 거울을
불 속에 던져넣어 태워버리려 하였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도사가 홀연히 집으로 들어와 마당에
피워놓은 불 속에서 거울을 꺼내 가지고 나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풍월보감을 태우려고 하다니. 누가 앞면을 보라고 그랬나? 공연히
가짜를 진짜로 여기다가 자기 혼을 빼앗겼으면서"

가짜를 진짜로 여긴다는 말은 경환 선녀가 사는 태허환경 입구에 씌어
있는 문구와 비슷하였다.

"가짜가 진짜로 될 때는 진짜 또한 가짜요,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되는 곳엔 있는 것 또한 없는 것과 같도다"

결국 희봉으로 향한 연정과 욕정 같은 것도 따지고 보면 거울 속의
환상처럼 가짜인 셈이었다.

그런 환상에다 가서가 목숨을 걸었으니 제 명에 살다 갈 리가 없었다.

그런데 가대유는 가난하여 가서의 장례를 치르는 일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가사, 가정, 가진 대감을 비롯한 가씨댁 친척들이 얼마씩
형편따라 도와주는 바람에 그런대로 가서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 중들을 불러 경을 읽게 하는 기경식을 올리고,
이레째 되는 날 발인하고, 영구는 나중에 고향으로 운구할 작정으로
일단 철함사라는 절에 맡겼다.

가서의 부고를 접한 희봉은 가서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한 계략이
가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을 알고는 마음 아팠지만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아비가 있는 몸이 친척인 가서에게 몸을 허락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이후로 희봉은 다른 남자들이 자기에게 빠져 가서와 같은 전철을
밟을까 싶어 몸조심을 하게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