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는 순식간에 백냥이라는 큰 돈을 노름빚으로 안게 된 셈이
되었지만, 그렇게라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이제 가도 되겠지? 내가 차용증에 적은 대로 빚을 갚을 테니까 제발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소문내지 말기 바라네"

가서가 다시 한번 가용과 가장에게 비굴한 자세로 부탁을 하고 나서
방문을 나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가장이 가서를 막아서며 말했다.

"지금 대부인이 계시는 집으로 통하는 문은 잠겨 있고 또 저쪽 대청
에서는 대감께서 남경에서 온 물품들을 점검하고 있으니 그리로 지나갈
수도 없게 되었어.

부득이 뒷문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
해야 한단 말이야.

내가 먼저 뒷문으로 나가서 동정을 살피고 올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는게
좋겠어"

"이 방에서 기다리란 말인가?"

가서는 점점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놓으러 들어올 거거든.

그러니까 내가 잠시 안전하게 숨어 있을 곳을 알려주지. 이리로 따라
오게"

가장과 가용은 촛불을 끄고 가서를 데리고 나와 어둠 속을 조심조심
걸어나가다가 어느 돌층계에 이르러 손으로 더듬고 하더니, "이 돌층계
아래가 좋겠어. 여기에 들어가 있게나. 내가 나가도 좋다고 할 때까지"
하며 숨을 곳을 정해주었다.

가서가 엉금엉금 기어 돌층계 아래로 들어가 쭈그리고 앉자 가장과
가용이 잽싸게 자리를 떴다.

조금 있으니 돌층계를 밟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가장과 가용이 오는가 보다 하고 가서가 머리를 살짝 내미는 순간,
왈칵 위에서 끈적끈적한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억"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가서는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코도 함께 막았다.

위에서 쏟아진 것들은 바로 똥과 오줌들이었다.

누가 분뇨통을 기울여 부셔낸 모양이었다.

난데없이 똥 오줌을 뒤집어쓴 가서는 때마침 세차게 불어오는 겨울
찬바람에 이가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오늘 밤도 동태가 되는가 보다 하고 불안해하고 있는데, 가장이 잰걸음
으로 다가와 급히 속삭였다.

"자, 빨리 달아나게"

가서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뒷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똥 오줌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으로 돌아온 가서는 눈이 둥그래진
문지기 하인에게 거짓말을 해대었다.

"하도 어두워서 그만 똥통에 빠졌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