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의 결과가 "지역분할"로 나타남으로써 한국정치에서의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과거의 역대 선거에서는 지역주의적 선거양상이 영남과 호남의 두 지역에
한정되었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충남북지역까지도 지역분할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총선에서는 강원지역이나 경기지역에
까지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확산되어 좁은 나라가 정치적으로 4분5열되지
않을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것이다.

사실상 어느 나라의 어느 선거에서도 지역성 또는 지역의식은 유권자들의
투표행태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하나의 변수가 된다고 할수 있다.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어 있는 선진국에서도 후보자의 출신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지표가 나올수 있고 지역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이
확연히 달라질수도 있다.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선거인을 한 사람이라도 더 확보하는
후보자가 그 지역 선거인단의 표를 모두 차지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에서의 지역주의는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일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일은 바람직한게
아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역주의보다는 후보자의 인물
능력 정책 공약 등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 주권을 행사,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걸음 더 성숙되기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결과는 적어도 몇몇 지역에서는 지역주의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 ''지역분할''을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와같은 지역주의의 심화를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수 있다.

선거에서의 지역주의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지역주의가
전근대적인 지방연고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의 지역주의는 반드시 그러한 전통적 연고주의에
기반한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 이유는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해방후 40~50년대의 여러 선거에서
보다는 60년대 이후의 역대선거에서 오히려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여러 선거에서는 주로 여당에 의해서 지역주의가
직접 간접으로 촉발된 것이었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지역주의적 투표행태
는 주로 야당들에 의해 부추겨진 것이었다고 할수 있다.

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이 지역등권론을 주장한 것이나, 김종필자민련총재가
충청지역에서 지역자존심을 강조해 ''지역분할''을 일으키려 한 것은 부인
할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남지역이나 충청지역의 유권자들이 두 김씨의 부추김만
으로 지역주의적 투표를 했으며, 그로 인해 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 패배
하게 된것이라고 단정할수는 없다.

호남과 충청지방뿐 아니라 다른 지방들에도 이른바 지역정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지역정서들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이 반민자당
정서였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와같은 분석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서울에서의 민자당의 완패와 경기및
강원지역에서의 민자당의 고전이다.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대통령은 일부 지방에서의 지역주의와 지역
바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로부터 비교적 중립적이었던 중부와 영동 영서
지방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었다.

뿐만 아니라 김영삼대통령의 집권초기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역에 관계
없이 90%에 달하는 국민들의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의 지지도가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5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각종 선거에서 지역주의 변수가 실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또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변수인 것은 사실
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모든 선거에서 항상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지역주의는 한국의 선거에서도 상수가 아닌 변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이른바 지역바람의 강도도 상황에 따라 더 강해질수도 있고 약화될
수도 있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선거에서의 지역주의는 여전히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며 앞으로의 선거
에서는 지역주의가 반드시 극복되어야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언동
은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주의나 지역바람 또는 지역정서를 이겨낼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다.

다양하게 분화된 계층과 지역정서들을 모두 충족시킬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
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집권여당은 물론이고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야당들도 지역주의나
지역분할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신뢰감을
국민들에게 줄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부와 여당은 집권초기에 광범한 국민의 지지를 모을수
있었던 개혁바람의 위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으며 세계화바람이나 세대
교체론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수 있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였다.

오히려 정부와 여당은 일관성없는 정책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실망시켜 왔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의 지역바람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정치에서의 지역주의는 우려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정치인들과 국민이 함께 극복해 나가야할 앞으로의 과제일 따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는 이 시점이야말로 진정한 한국
민주주의의 시작이라는 인식으로 여/야의 모든 정치인과 국민들은 선거에서
의 승패와 관계없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데 정성을 쏟아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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