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2,000t을 싣고 일요일 오후 강원도 동해항을 출항한 남한 첫 선편이
월요일 오후 함경북도 청진항외항에 도착했다.

짤막한 이 한토막의 보도가 그 얼마나 감격적인가.

출항직전 느닷없이 벌어졌던 실랑이를 떠올리면 그런 감회가 더욱
깊다.

북경회담의 합의대로 남측이 밤을 지새우며 도정 육송 선적을 끝내자
마자 북측이 돌연 태도를 바꾸어 출항연기를 요청해 왔다는 소식은
한때나마 불길한 예감을 드리운 것이 사실이다.

남쪽쌀의 청진항 입하는 50년 분단사상 하나의 분수령이 됨직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쌍방 관계자들은 넘치고 처짐없이 매사를
덤벙대지 말고 차분히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때 중도파기 위험이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로 역사적 거사를 내손으로 이룬다는 황홀감에 도취한 나머지
지나친 수선을 띨 경우 일을 그르치기 쉽다.

식량난이 다급하다 해도 북의 집권층으로서 남한쌀을 들여다 주민을
먹인다는 것은 비상을 약으로 쓰는 이상의 모험이다.

그럼에도 저들이 북경회담에 빠르게 응한 배경은 조기수교를 미끼로
일본쌀의 대량지원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피할수 없었던 한국쌀
수용의 선타결 불가피라는 현실의 벽이다.

물량면에서도 일측이 유리하고,더욱 수교를 전제할 경우 청구권의
전도금 성격으로 쌀을 대량 앞당겨 수용,당장의 위기를 넘기는 선택은
가능하다.

감정면에서도 남한쌀과는 다르다.

우리 정부도 이같은 이면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극도의 경쟁심 시기 증오가 가득찬 양자 관계에서 어느 일방이
스스로의 열세를 인정하여 화해에 응하게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우세측이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체면손상을 덜어주는 성의는,어렵지만 그 효과가
크다.

오른손이 돕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경구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북경합의에서의 남북입장의 기본적 상이점은 아마도 한쪽은 공개를,다른
한쪽은 그 반대를 바라는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럴때 일이 가장 쉽게 풀리는 길은 전자쪽에서 양보를 하는 것이다.

또 그런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알려진다.

이 점에 있어,특히 선거가 겹친 상황에서 정부가 과연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는지,시간경쟁에 경도된 언론이 자제력을 가지고 이 민감 대사를
다루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셋째 1차합의분 15만t에 대한 물량감의 상위이다.

일부에선 대단치 않은 양인줄 아는 모양이나 그것은 100만섬 물량에다가
국내시세로 약 2,000억원,즉 3억달러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국내가가 국제시세보다 5배나 비싸서 그렇지만 그래도 거액임엔
틀림없다.

일차 결정권을 가진 정부로서도 이같은 국고부담,더구나 외미 대체지원등
추가지원을 논의 결정함에 있어서 국민투표는 아니더라도 최소 국회동의는
거쳐야 옳다는 것이 상당수 국민의 생각인듯하다.

그렇게 국민의 총의가 모인 대북 쌀지원일수록 뜻이 더욱 깊어지고
효과도 길게 파급되리라 확신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