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맥 끝머리, 전남 북 경남 3개도에 걸쳐 산자락 둘레 8백여리에
이르는 지리산은 설악산, 한라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명산의 하나로
꼽힌다.

노고단 동쪽으로 천왕복에 이르는 45km 주능선에는 반야봉, 명선봉을 비롯
하여 덕평봉,촛대봉,연하봉등 1천5백m급 웅장한 고산준봉이 심여개나 솟아
있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지리산 종주산행의 꿈을 한번쯤 갖게 마련
이다.

모처럼 자유로운 몸이 된 필자는 방학을 맞아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막내
아들과 함께 2박3일 지리산 종주를 했다.

남원행 고속버스를 타고 지리산 입구 성삼재에 도착한 때는 오후 1시반,
산악지역 기후답게 기온이 뚝떡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노고단에 오르는데 육중한 배낭이 온몸을 짓눌렀고 비에 흠뻑 젖어 처량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자 노고단을 지나면서 비는 멎었고 일걸령, 반야봉을 거쳐 뱀사골
산장에서 일박을 하는데 엄습하는 피로에 추운줄 모르고 금새 잠에 깊이
빠져 들었다.

다음날 새벽 5시, 기상과 동시에 강행군을 시작했다.

토끼봉, 신원샘을 거쳐 철쭉꽃 만발한 "소월의 길"을 밟아 세석산장에
이르니 오후 3시.

여덟시간 동안 26km를 주파한 샘이다.

다시 촛대봉, 연하봉을 거쳐 장터목산장에 이른 오후 5시경, 비는 그쳤으나
짙은 안개가 산장을 뒤덮고 있어 음산한 기분마져 들었다.

산장에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경험담을
나누었는데 관상보는 사람, 역마살이 끼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등
별별 사람이 다 모인것 같았다.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지방자치선거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고 자정을
넘어서자 창문밖이 밝아 오는 것이 아닌가.

밖에 나가보니 이틀간 천지를 뒤덮었던 먹구금은 간데없고 둥근 달이 덩실
떠 있다.

자연의 조화가 신비스럽기만 하다.

새벽에 일어나 천왕봉에 오르니, 동녁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글거리는 금빛 태양이 자태를 천천히 드러냈다.

전생에 3덕을 쌓아야 볼수 있다는 일출을 목격하는 순간, 모두 환호성을
질러댔다.

지리산 대장정의 클라이막스였다.

세시간 후에는 중산리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60km의 고행길을 되뇌이면서...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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