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남북한은 21일 대북 쌀공급을 위한 기본원칙에 합의하여 한국측이
북한에 우선 15만t의 쌀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약속하였다.

이와같이 북한이 한국의 쌀제공 요청을 받아들인 이면에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는 식량난과 경제난이 자칫하면 김정일체제의
붕괴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94년 북한의 곡물생산은 전년대비 6.2% 늘어난 412만t정도로
파악되고 있으나 연간 총 곡물소비량인 672만t에는 턱없이 부족해
최소한 100만t정도의 곡물이 추가로 지원되지 않을경우 대다수의
북한주민들은 허가를 메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와함께 북한경제는 지난해 마이너스1.7%의 성장을 기록,90년이후
지속적인 마이너스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자생적인 경제회복의
잠재력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라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김일성 사망으로 인한 정치사회적 불안정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주민의 동요를 막아보자는
북한 최고지도층의 결단이 한국의 쌀제공 제의에 응한 주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와같은 배경에서 성사된 대북 쌀지원은 비록 교역형식이 민간차원의
구상무역형태를 띠고 있으나 회담의 주체가 양국의 고위인사로 구성된
실질적인 정부대표였다는 점과,시기적으로 지난 13일의 미.북 경수로협상
타결과 맞물려 있다는 상황을 고려할 경우 오랫동안 정체되고 있는
남북경협과 대화의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더욱이 이번 회담의 주의제는 제공될 쌀의양 교역형태,제공형식및
추가지원 문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추가협상과
경제교류문제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측의 경제교류 활성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있게 들려오고 있다.

물론 대북 쌀지원은 분단 이후 최대규모의 남북교류이고 추가지원
협의를 위한 남북한 당국의 후속협상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남북관계개선의 청신호로 볼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아래서 우리가 주의깊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이번 복한의 쌀지원 요청이 김정일이 경제를 재건하고 정치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뿐 북한의 대남 근본정책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북한이 당초 우리를 제외한 일본을 비롯한 7개국에
식량원조를 요청한 사실과,경수로 협상에서 마지막까지 한국을 배제하고
대미외교에서 실리를 추구하는등 남북경협및 대화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와같이 김정일체제의 북한은 정부차원의 본격적인 남북경협 확대보다,
한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미.일관계 정상화를 통한 실리추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사정과 이와 맞물린 국제경제 환경을 종합하여
고려할 경우 북한의 경제개방 추진에서 남북경협의 중요성은 상당히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북한이 김일성 사망 이전부터 외국인투자 제도를 정비하고,
나진.선봉지역을 자유무역항으로 지정하면서 외국인에게 폭넓은
기업설립권을 허가하는등 외국자본유치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으나
북한의 낮은 대외신용도와 열악한 사회간접 설비 때문에 많은 서방
기업들은 대북투자에 대하여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경우 북한은 일차적으로 나진.선봉지역에
여러 가지 호조건을 제시하며 남한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개방 초기 단계에서는 동족적 차원에서 고려된
우리나라 기업의 기술과 자본 진출이 북한 외국인투자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한편 이와 같은 북한의 대외개방및 남북경험 확대에 대비한 우리측의
원칙및 방향 정립과 관련된 각종 법적.제도적 기반정비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일차적으로는 북한체제가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우리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수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또한 핵문제로 증폭된 한반도의 긴장 고조가 우리경제 전반의 불안과
대외 신뢰도 하락 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처럼 북한체제가 혼란에
빠지고 정치.경제적 불안정이 지속되는 것이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장기적 차원의 대비책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단기적으로는 이번에 결정된 바와 같이 북한에서 심각한
부족난을 겪고있는 식량을 비롯하여 생필품과 에너지를 인도적.동족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남북간 화해조치및 각부문의 협력,전쟁방지를
위한 평화의 궤도화및 통일실현을 위한 원칙합의와 같이 남북양측이
상호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지난 92년에 체결된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의 원칙 준수를 북측에 요구할 수 있으며,이 당시
합의된 "남북 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의 본격적 가동에 대비한
세부적 지침도 정비.보완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지금까지 남북관계에서 보여 왔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대북 경협의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우리나라의 대북 영향력 확대와 통일기반 구축을 위한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국 대북한 경제협력과 지원은 전략적 차원에서 신중히 검토하여
북한의 진의를 충분히 파악한 이후 우리가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대북 견제용 카드로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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