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준 < LG엔지니어링 사장 >


글을 쓸때 필요한 것이 사전이다.

나는 직업상 글을 쓰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사전이라고는 30년전에 산
민중서관의 포켓영한사전 하나뿐인데 그것도 여행용 서류가방에 처박아
둔채로 회사에 놓아두고 다니므로 집에서 글을 쓸때는 막내아들 방을
내방처럼 드나들게 된다.

네아이중 셋은 짝을 맞춰 집을 나갔고 막내는 대학재학중에 입대하여
일선에서 철책근무중이기 때문이다.

나를 놀라게 한것은 막내의 책장에 국어사전이 여러권이고 옥편 영한사전
한영사전 중어사전등 사전류만 10여권이 넘게 꽂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아직 내 책장을 가져본 일이 없다.

식탁을 사용하던지 아니면 방바닥에 앉아서 탁자를 이용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우리세대가 국민학교 중학교 다닐때는 밥상을 놓기도 불편하니까 숫제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했었다.

아버지는 서재는 커녕 책상도 하나 없는데 아이들은 서재같은 공부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백만장자에게 당신아들은 저렇게 풍성하게 사는데 당신은 왜 이렇게
구차하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실감이 난다.

루즈벨트가 주창한 "가난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란 말이 우리에게 아주
절실하게 느껴졌던 때를 우리는 살아왔다.

몇년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을때 진찰실에서 어머님 내의가 헤진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만한 여유가 있는데도 가난에 대한 공포가 풍요로운 소비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해방전에 한때 영어교사였던 우리 부친은 대쪽같은 성품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시고 김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만주로 전전하셨다.

해방후 고향에서 적산관리위원장을 역임하셨는데 6.25후 작고하셨을때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이 등기도 안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해방3년전에 매입한 적산가옥이었는데도 부친은 배나무 밑을 지나면서
갓끈을 고쳐매지 않으신 것이다.

여성은 어느 시대에나 현실주의자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를 그토록 고생시킨 부친의 비현실적인 청빈을 지금도
가슴아파하시지만, 그리고 우리도 한때 어머니에게 동조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혼탁한 사회에서 끝까지 부조리와의 타협을 거부하신 부친의
기개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양주병을 선사받고 필드초대에 선뜻 응하는 현세태를
지하에 계신 우리 아버님은 고운 눈으로 보지 않으실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4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