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용의 질책과 지시가 있자 하인들이 초대를 오랏줄로 묶어 꼼짝을
못하게 하였다.

초대는 이제는 공격 목표를 뇌이에게서 가용으로 바꾸었다.

"도련님이 나에게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요? 도련님은 관두고라도
도련님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나에게 큰소리 한번 치지 못했다구요.

내가 없었으면 도련님의 증조부이신 가대화 대감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 이 집안이 누리는 벼슬과 부귀영화도 있을 수가
없었다구요.

그래 나에게 은인 대접은 못해줄 망정 이렇게 죄인처럼 오랏줄로
묶어놔? 에이, 더럽고 더럽다.

배은망덕한 것들"

희봉이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가관이었다.

그래서 가용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었다.

"저렇게 주인도 모르는 위인을 가만 놔둬요? 당장 내쫓아 버리지
않고. 다른 하인들도 물들까 무서워요.

집안에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가차없이 내쫓아요"

희봉의 말을 들었는지 초대가 더욱 발광을 하며 부르짖자 하인들이
대여섯명 들러붙어 마구간으로 끌고 갔다.

초대는 질질 끌려가면서 지금까지는 술을 먹어도 한번도 발설하지
않았던 말을 토해내고 말았다.

"야, 왜 가진 대감이 나한테 꼼짝을 하지 못했는지 알아? 다 이유가
있다구. 재 위를 기어다녔거든. 재 위를 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무릎이 더러워진단 말이야. 무릎이"

무릎이라는 말과 며느리라는 말이 한자로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기겁을 하여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또 있어. 시동생과 붙어먹는 년도 있다구. 내가 그 동안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이 집안의 더러운 비밀을 지켜왔지만, 날 이렇게 취급하는데
이제 국물도 없어. 다 불어버릴 거야"

초대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진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스르르
혼절하고 말았다.

가용은 진씨를 부축하랴 초대를 처치하랴 정신이 없었다.

"저, 저놈의 입에 말똥을 처넣어라!"

가용이 온 힘을 다해 외치자, 하인들이 마구간 우리에 초대를 묶고
진흙과 범벅이 된 말똥을 마구간 바닥에서 퍼올려 초대의 입에다 잔뜩
집어 넣었다.

그제서야 초대의 입이 잠잠해졌다.

진씨는 시녀들이 모셔가고 희봉은 보옥과 함께 영국부로 향하였다.

그때 보옥이 침통한 얼굴로 희봉에게 물었다.

"재 위를 기는게 뭐예요?"

"미친 놈이 하는 소리인데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냥 잊어
버려요"

희봉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었지만 진씨가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