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제일은행장은 16일 마치 막 대학입시를 치른 학생처럼 아주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박석태여신담당이사도 마찬가지였다.

제일은행직원들 모두가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정이야 어쨌든 3개월이상 발목잡혀온 유원건설의 망령에서 비로소
헤어났구나하는 얼굴들이었다.

제일은행직원들의 이런 반응은 제일은행이 유원건설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한보그룹을 유원건설의 인수자로 결정한 것이 최선이 아닌 차선"
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는 논리의 근거는 이렇다.

한보그룹은 지난91년 이른바 "수서사건"으로 궁지에 몰렸었다.

지금도 막강한 자금동원력을 바탕으로한 공격적 경영으로 많은 사람들로
부터 의혹의 시각을 받고 있다.

최근엔 자금악화설까지 나돌고 있다.

또 은행감독원의 여신관리규정상 30대그룹에 편입된 대기업그룹이기도
하다.

여론도 과히 좋지 않은데다 30대그룹이라는 점때문에 유원건설의 인수자로
결정할 경우 특혜시비가 일 것이 뻔했다.

그런데도 제일은행은 한보그룹을 인수자로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능한 빨리 유원건설의 인수자를 결정해야겠는데 한보그룹외에는 마땅한
기업이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제일은행이 유원건설의 제3자인수를 발표한 지난3월22일직후만해도
제일은행의 원칙은 "30대그룹은 가능한한 제외한다"였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았다.

19개 업체가 인수의사를 내비쳤지만 30대그룹이 대다수였다.

또 제일은행이 내심으로 유원건설을 인수했으면 했던 대성그룹의 경우
인수조건이 맞지 않았다.

한보그룹이 유원건설의 인수자로 윤곽이 잡혔던 것은 이달초였던 것을
알려지고 있다.

단지 제일은행측이 "한보그룹은 절대 아니다"는 식으로 연막을 쳤을
뿐이다.

인수희망업체를 대상으로 인수조건을 타진한 결과 최종적으로 물망에
올랐던 업체는 한보그룹 벽산그룹 대성그룹이었다.

이중 가장 좋은 조건을 내걸며 유원건설인수에 적극적이었던 업체는
한보그룹이었다.

제일은행은 그러나 끝까지 벽산그룹과 대성그룹에 마음을 두었다.

벽산그룹은 정우개발을 인수해 정상화시킨 경험이 있다는 점이, 대성
그룹은 30대그룹도 아닌데다가 자금력도 튼튼한 업체라는 점이 각각 장점
으로 꼽혔다.

그러나 벽산과 대성은 제일은행과는 상이한 조건을 내걸었다.

먼저 가계약을 맺은후 정밀실사를 실시한 다음에 본계약을 체결하자는
것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자는 두 그룹의 제안은 어떻게하든 빨리
유원건설을 "처분"하겠다는 제일은행의 구상과 평행선을 그었다.

그래서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한보그룹으로 결정했다"는 것이
제일은행의 설명이다.

어쨌든 제일은행은 유원건설의 망령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러나 한보그룹에 대한 신뢰감이 튼튼하지 못한 상황이라 자칫하면
한보및 유원과 함께 제일은행도 헤어날수 없는 수렁에 빠질수도 있다는
것이 금융계의 중론이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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