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쪽으로 와서 앉지. 근데 바깥에는 눈이 내리는 모양인가?"

보옥이 대옥이 걸치고 있는 붉은 우단 우장옷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대옥은 보옥에게 대답을 하려고는 하지 않고,그 동안 보채와
보옥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알아내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옥의 질문에는 시녀들이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네. 바깥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어요"

"그럼 대옥 누이가 내 우장옷을 가지고 왔나?"

보옥이 대옥의 손에 뭐가 들렸나 하고 보아도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었다.

"봐요. 내가 오니까 도련님은 가려고 하는군요. 보채 아씨랑 재미있게
노는 것을 내가 방해한 모양이죠?" 대옥이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아니야. 언제 내가 간다고 그랬나? 우장옷을 가지고 왔는가 물었을
뿐인데"

대옥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쓰는 보옥을 옆에서 보면서 보채는 둘
사이가 어떤 관계인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긴 해도 둘은 서로 연정을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보채는 자기의 마음 속에 또 시기 비슷한 감정이 스며들어 오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내쫓으려는 듯 얼른 심호흡을 해보았다.

그리고는 동그랗게 생긴 조그만 창문을 열어 싸락눈이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얀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꽃비처럼 나비처럼 난분분히
나부끼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도 저 눈송이들처럼 어디나 골고루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한 사람을 독점하려는 마음으로 시기와 질투에 빠지지 않아도
될 텐데. 보옥과 대옥, 보채 사이에 이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눈치챈 보옥의 유모가 결국 한마디 거들었다.

"밖에 저렇게 눈이 오고 하니 보옥 도련님은 그냥 여기서 아씨들하고
좀 더 노세요. 저쪽 방에서 이모님이 차와 과일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
같던데. 내가 시녀들을 시켜 우장을 가져오게 할테니 다른 하인 아이들은
돌려보내도록 하세요"

유모의 말에 보옥이 머리를 끄덕이자 유모는 밖으로 나가 눈발 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는 하인들을 돌려보내었다.

설부인이 맛있는 다과를 한 상 가득 차려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술 생각이 슬그머니 난 보옥이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제 우씨가 만든 거위 발바닥 요리와 집오리 혓바닥 요리를 먹었는데
그거 참 별미더군"

우씨는 녕국부 가진 대감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