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꾼들처럼 운명의 여신에게 변함없는 믿음을 바치는 미신 많은 족속도
없다.

옛날 한국의 노름꾼들은 산신에게 노름운을 비는 일도 있었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골패를 가운데 수패한개를 땅에 묻고 신랑에게
한밤중에 백일기도를 드리게 되면 산신이 그의 담력을 시험한 뒤 노름수를
가르쳐준다고 믿었다.

반면에 노름꾼들은 몇가지 금기를 가지고 있었다.

노름 도중에 동전이 남의 자리쪽으로 굴러가게 되면 돈이 계속 흘러
나갈 근심이라고 믿은 나머지 그 동전을 절대로 판돈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또 까치집의 가장 굵은 나무가지를 뽑아내 흐르는 물속에 넣고 거꾸로
심어 올리면 노름판에서 돈을 따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름이 성행한 마을에서는 까치집을 찾아 볼수가 없었다.

서양의 노름에서도 갖가지 특이한 관습들이 지켜지기는 마찬가지다.

노름꾼이 야릇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뽑아낸뒤 카드에 입김을 불어 넣거나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주사위를 두손으로 정성들여 비벼기를 충만시키고
돈을 잃을 때는 노름판을 떠나 밖으로 나갔다.

둘어 오면 돈을 딸수 있다는 믿음은 한국의 노름꾼들에게도 전해진 관습
이다.

또 노름판에서 돈을 딸수 있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의 윗옷에 판을
꽂아 주고 첫판에 이긴 사람이 셋째판도 휩쓸게 된다는 속담도 있다.

반면에 노름꾼이 두다리를 꼬고 앉고 무엇이든 십자형으로 교차시키는
것, 보가 덮이지않은 테이블위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것, 노름판에서 돈을
꾸어 주는 것, 카드를 떨어뜨리는 것, 노름을 할 때 노래를 부르는 것,
금요일 오후6시전에 노름을 하는 것, 사팔뜨기를 노름판에 끼워 주는 것
등은 금기사항으로 되어 왔다.

이러한 노름판의 미신은 어떤 법칙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 인간욕망,
어떤 법칙의 지배도 받지않는 운수를 어떻게 해서든지 조종해 보려고
하는 인간욕망의 갈현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이제 운수에 걸어 보게 되는 노름의 멋도 사라질 판이다.

비디오 카메라, 특수컴퓨터, 진동기, 형광화투 등 최첨단 기술을 동원한
사기도박기기가 등장했다니 말이다.

일상적 전태감과 정서적 불안감을 노름을 통한 긴장감 조성으로 풀어
보려는 노름꾼들의 일탈행위에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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