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일사불란한 것을 좋아한다.

외국인들은 "차이나 타운"과 "도요타"자동차가 없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지적한다.

일사불란한 것은 집단의 아름다움이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도 있지만 개성이나 창의성의 억압이라는 면에서는 큰 취약점도
지니고 있다.

다양성에 인색하고 일사불란한 것을 선호하는 우리들의 취향은 깊게는
권위주의적인 유교문화에 뿌리박고 있으며 가깝게는 군사문화적인 영향을
크게 받은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서구사회는 문예부흥기를 지나면서
개인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가치부여를 통해 종래의 집단중시에서
개인중시로 서서히 전환해 왔음을 알수 있다.

이러한 서구의 움직임에 발맞추지 못한 동양은 사상이나 과학의
양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게 되었고 18세기 이후 인류의 역사에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는 혹평까지 듣게 되었다.

서구문화와 문명의 지배현상이 가시화되면서 동양도 점차 개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집단주의적인 성격에서 개인주의적인 사회로
급속히 전환해 가고 있다.

아시아지역에서 일고있는 민주화 바람은 이러한 경향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며 정보혁명과 함께 민주화 바람,개인주의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될 전망이다.

이제 개인은 민주화 시장경제화라는 커다란 흐름의 기본적인 행동주체가
되면서 그 누구도 개인주의의 흐름을 되돌려 놓을수는 없을 것이다.

서양인들이나 동양인들이나 새롭게 발견한 "개인"의 존재와 가치,그리고
중요성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는 양면을 갖는다.

자유를 누린다는 즐거운 측면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의 측면이다.

이 두 측면중의 하나만을 강조하면 참다운 개인주의는 성립할수 없다.

자유와 책임이 균형을 이루어 함께 갈때 개인주의는 자유의 보장을
통한 인간의 존엄성 유지와 생활의 풍요를 가져올수 있는 강점을
최대한 발휘할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 같은 듯하면서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 하나하나가 모두
자기나름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외모가 다르고,음성이 다르고,경험이 다르고,생각과 늠낌이 다르다.

따라서 개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행동하게 하면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표출되게 마련이다.

한편 다양성의 존중은 각 개인의 중요한 책임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훌륭히 정착하고 시장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풍토가 전제되어야 한다.

나와는 다른 남의 행동 태도 가치관 생각을 존중할 줄 알고 내것을
강요하지 않는 수용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차원에서 뿐 만이 아니라 조직이나 국가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문화의 독창성은 내세우고 자랑하면서 남의 문화는 비평하고
끌어내리는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을뿐
아니라 파괴적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독특한 한 부분으로서 세계를 완성하듯이 남들의
것도 우리의 것과 동일하게 고유한 것이면서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흔히 인용되는 황금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내가 나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이 다른 사람도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대접해
주는 것이 공생의 기본원리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폭넓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하다.

정보사회 지식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면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요구되는 자질 중의 하나가 창의성이다.

다양성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나 집단에서 창의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산에 가서 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다양성의 존중은 생산양식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에서는 표준화 규격화등 일사불란한 것이 효율성의
확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소득수준의 향상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개성화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의 이행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특히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는데 따른 투자위험,개발도상국에 의한
손쉬운 모방,낮은 부가가치 등을 고려할때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에 의존할수록 우리는 저부가가치의
전통산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높은 생활수준을 이루기가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의 구축과 월활한 운용은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수용과 다양성을 발휘할수 있는 기반구축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민주주의나 크게 구호로 내세우고 있는 세계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을 뭉뚱그려 쉽게 이야기 한다면 다양성을 수용하겠다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남의 것도 내것 같이 존중하기,맘에 들지않는 것 받아들이기등 다양한
것을 인정하고 수용할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