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마을 직장에 흔히 2인1조의 짝꿍이 있다.

남들은 그중 하나만 봐도 그 짝을 연상한다.

서로 원해 짝을 짓기도 하지만 싫더라도 좌석 주거의 인접, 닮은 외모로
해서 그런 취급을 받는수도 있다.

나라도 같다.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스칸디나비아의 스웨덴과 노르웨이,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대양주의 호주와 뉴질랜드, 인도아대륙의
인도와 파키스탄, 도버해협 건너의 영국과 아일랜드 등을 들수 있다.

극동에선 한국과 일본이 그렇다.

제3국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의 한.일인 혼동을 경험한 양국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때 느낌은 같지는 않을테다.

우월감 갖는 쪽은 기분이 상하리라.

하지만 그때 불쾌감 외에 일말의 연대의식 같은 걸 느낀다면 잘못인가.

최소한 저 친구들과 도매금으로 값이 떨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도 협력이
이롭다는 생각쯤 떠 올려야 새시대 이웃 아닌가.

주변에 몸에 배었던 반일감정을 돌리려 애쓰는 사람들이 늘어 왔다.

아직 거센 반론속의 새 한.일관계 정립의 주장은 비록 소수지만 현실적
이다.

첫째 과거 은수시비에 끝없이 매달려 본들 득될게 없고 미래재향적 협력이
최상이다.

일언이 폐지하고 땅을 떠메고 멀리 이사갈수 없을바엔 상부상조로 어슷
비슷이 잘 살아야지 이웃간에 으르렁거려도, 빈부차가 심해도 서로가 불안
하다.

둘째 나라건 사람이건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과 미움(애증)이 겹친다.

평소 아웅대다가도 외부 이질집단과 맞설땐 연대감과 동질애가 생기게
마련이다.

불행히 2천년 한.일관계는 가해 피해의 위치가 고정이었지만 이제 새 세계
에선 이웃끼리 미워할래야 그럴 틈도 없다.

협동해 공동이익을 챙기기도 바쁜 세상이다.

셋째 양국민이 서로 이해하려면 역사를 바로 배워야 하는데 양국 지배층은
상호 멸시와 의심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왜곡해 가르쳤다.

이점에서 어느 한쪽 잘못이 아니라 둘이 비슷하다.

일본에선 구지배층인 막부나 군부가 그랬고, 일본유족회 중심의 현 극우파
도 과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우월.한열등 논리를 조작하고 주입하는데
영일이 없다.

고대사, 왜구 노략질, 임진란까진 제쳐두고 근대 1세기 식민착취의 가해
피해 진상만 제대로 가르쳤어도 식민지배가 피식민지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는 강변이 일본안에서도 먹힐리 없다.

설령 일부 결과가 그렇던들 시혜란 자칭은 망발이다.

땅쑤셔 훑어가던 쌀수탈 콩깨묵 배급, 놋그릇 관솔등 전쟁물자 강탈,
툭하면 뺨때리며 설치던 칼찬 순사, 징병징용 정신대의 피해자 목격자가
눈뜨고 살아 있는데 한.일 합방이 평화적이었고 식민지는 언급도 없었다는
정치가의 궤변이 계속 나오는 나라가 일등국인가, 한심한 나라인가.

한국도 잘못했다.

중국중심 동양사와 서양사에 중점을 두고 일본사는 설쳐 배웠다.

그 결과 미개 왜구가 명치후 급작한 서구 모방으로 부국강병 입신한 졸부로
보는 것이 한국인의 일본관이다.

10세기부터의 가나문자 보급, 양명학과 불교를 소화한 국학의 계발 기여,
서양문물 흡수와 물산장려등 산업혁명기반 사전조성등 일본사에 깜깜이다.

철저한 봉건제외 유산인 천직의식과 가업중시 전통이 전후 일본기업을
세계수준에 올린 동인임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과오는 책임만 따질게 아니라 먼저 시정하는 쪽이 대국이고, 실리도
본다.

양보는 하지 않고 상대만 원망하면 양편 모두 손해다.

가령 구총독부 건물 철거만 해도 좀더 대안을 모색했어야 옳았다.

지난 3.1절 해체 고유식이 텔레비전에 비친 다음날 출근길에서 마주친
일상사 직원의 매서운 눈매를 잊기 어렵다.

후유증이 어떤 것인지도 숙고를 했는가.

그런 내향적 시각이 일본 극우파에 자극제가 되고 세계화시대 역류란 혹평
을 사지 말라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다.

지도충이라면 민중의 저항이 있어도 장기안목의 방향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외국인이 옆에 있든 말든 우리가 무의식중 내뱉는 망발에 타국인, 특히
일본인에게 인자 대신 X를 붙이는 입버릇이 있다.

프랑스인이 영국인을 개구리라 놀리듯 인접국을 비하하는 속칭은 어디건
있다지만 이처럼 내놓고 실례하는 예가 요새 세상에 또 있을까.

문제는 이제부터다.

지난 9일밤 일중의원이 채택한 "역사를 교훈삼아 평화결의를 새로이 하는
결의"라는 긴 이름의 문서를 둘러싼 최근 일본의 행동거지를 지켜 본
우리로서 차후 그들을 어떤 태도로 상대해야 할지 골치깨나 썩이게 됐다.

불전이란 어구를 피했다 해서 일군이 금방 쳐들어올까 겁낼 시대는
아니지만 소아병적으로 시시콜콜 물고 늘어지느냐, 대범하게 원론적 대응을
할것이냐에 모두 일장일단은 있다.

저들이 경제 기술면에서 칼자루를 쥐었다 해도 최소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훼방을 받고 이로울건 없을진대 북한의 벼랑 외교처럼 생사걸고 최후까지
달려들다가 몫을 챙기는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류탄 안전핀 빼고 폭파위협하는 인질범 수법이어서 아무나
못한다.

일본이 근대화에 사표를 삼아온 프로이센 독일은 나폴레옹에 짓밟힌후
보.불전 1,2차대전등 세번씩 프랑스를 유린했다.

일본이 반도침략 세계전 패전이란 점에서 독일과 유사하나 전후처리에선
천양지판이다.

스승에서게서 겉만 아니라 사죄나 배상같은 속을 본뜨질 않은 이유가 인종
다른 탓인지, 섬이란 지리조건 탓인지 알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일본이 탈아입구를 바라고 지진이 천지를 개벽해도
한.일 땅덩이가 멀리 떨어지진 않으리라는 개연성이다.

그렇다면 중.러.일 사이에 끼인 한반도를 19세기처럼 무력으로 편입해도
될까, 합심 동조해야 이로운가, 그 자명한 이치를 계산해야 한다.

그점엔 일인만 아니라 한국인도 같다.

그러면서도 먼 서양땅에서 마주치면 가깝게 느끼는 이웃사촌임을 일깨우며
살아야할 공동운명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