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해를 맞아 우리미술의 세계화작업이 한창이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개관되고 국제규모의 광주비엔날레가 준비되는
등 국내외에서 대규모 미술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서양미술 일변도로 치닫는 국내미술계에서 먹그림을
고집해온 한국화단의 거봉 산정 서세옥화백(66)을 만나 우리미술과 화단의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일찌기 50년대에 추상한국화의 세계를 개척, 후진들에게 자유로운 창작의
길을 열어준 산정선생은 "예술이란 그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자유의지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것이 태어난 사회의 뿌리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솔바람소리 가득한 성북동 자택에서 만난 산정선생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알마니셔츠에 작은 타원형 안경을 쓴 멋쟁이차림으로 한시집
"무송재시고"를 퇴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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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동안 서울대에 재직하셨는데요. 퇴임후 허전하지는 않으신지요.

<> 서화백 =학교에 나갈 때보다 더 바쁜 듯해요. 올해가 미술의해라
전시회도 많고 한시집도 가을엔 꼭 내야 하겠구요. 대학원 논문지도도
하니 한가할 틈이 없지요.

-한시는 언제부터 쓰셨는지요.

<> 서화백 =중년에 들어서면서 틈틈이 썼어요. 이번에 출간하려는 것은
90년부터 최근까지 쓴 작품들이에요. 135편가량 되지요.

중국과 백두산 여행후의 느낌과 감동을 적은 것이 대부분이에요. 중국
측에서 이런 종류의 한시는 중국에서도 보기 힘드니 교육용으로라도 꼭
내자고 졸라서 필사본 형태로 만들기로 했지요. 기회가 되면 그전것도
모아 2-3집을 내려 해요.

-제목이 "무송재시고"라고 되어있는데요.

<> 서화백 =무송재란 우리집 당호에요.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라는
뜻인데 도연명의 글에서 따왔지요. 집안에 오래된 소나무가 있기도 하구요.

-독서량이 방대한 것으로도 유명하시죠.인사동 고서점의 제일고객이라는
얘기도 있는데요.

<> 서화백 =보통 새벽 3시까지 읽어요. 아마 지금까지 1만권은 읽었을
거에요. 정신이 깃들지 않은 그림은 소용없다는 생각이고 정신을 가다듬는
일에는 독서이상 없다고 믿지요. 대강 읽는 것이 아니라 정독을 하는
편이어서 시간이 적잖이 걸려요.

-거문고도 잘 켜시죠.좋은 거문고를 2개 갖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 서화백 =음악은 그림과 다른 즐거움을 갖게 해요. 가까운 분들을
모시고 연주회를 열기도 하는데 근래 들어서는 감상자들의 태도가 전만
못해요.

예용해씨같은 분은 시작부터 끝까지 꼼짝도 않고 듣곤 했는데 요사이엔
연주중에 떠드는 사람도 생기고.김명환씨가 돌아간 후 고수도 마땅찮구요.

-일찌기 추상한국화의 세계를 개척,세상을 놀라게 하셨는데요.

<> 서화백 =메마른 구각이나 비좁은 질곡이 싫었지요. 미술에도 역사나
사회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구요.

-형태면에서 자유를 추구한 것과 달리 색에서는 먹을 고집하셨는데요.

<> 서화백 =세월이 흐르면 우주의 모든 것이 바뀌지만 개중에는 시간에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바로 축이지요. 먹은 그림의 축이에요.
모든 물감이 변해도 먹은 그대로 있지요. 먹의 유현함은 써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지요. 먹은 또 다루기가 어려워요. 모든 색이 포함돼
있거든요. 가장 어려운 것과 대결해보고 싶었지요.

-종이도 전통닥지만 사용하시죠.

<> 서화백 =20대부터 종이 개발에 힘을 기울였어요. 현재 시판중인
닥지중 10%정도만 순닥지에요. 나머지는 수입지죠. 수입지의 경우
순지의 10분의 1값밖에 안되니까요. 수입지는 우리순닥지에 비해
영구성이나 견고성이 훨씬 떨어져요.

-전통회화에서 추상쪽으로의 변신을 시도한 이래 줄곧 인간을 제재로
하고 계신데요.

<> 서화백 =모든 것의 시작도 끝도 인간이라고 믿어요. 인간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세상만물을 움직이는 근원적 힘이지요. 인간에 대한 관심
없이 어떤 예술도 존재하기 어렵다고 봐요. 형태는 단순하지만 실은
그속에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7정이 다 들어 있어요.

-작품제목중 "사람들"과 "군무"가 가장 많은데요.

<> 서화백 =인간은 모두가 가족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에요.
함께 살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근작의 경우 사물을 더욱 단순화시킨 듯한데요.

<> 서화백 =사물의 내용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해체해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모근 것을 해체했다가 재구성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지금의
사람형태를 만들었지요. 요즘엔 로고나 마크에 내그림을 원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선생님 그림을 놓고 무위의 소산이라고들 하는데.

<> 서화백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그중에서도 욕심이 만들어내는
온갖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야말로 무소무위의 작품을 이끌어낸다고 보지요.
자연과 사람, 나와 붓이 일체가 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일찌기 국전 철폐를 주장,결국 국전에 비구상부문을 신설한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 서화백 =제1회 국전에서 최고상인 국무총리상을 탔어요. 염치없이
제1회 초대작가상도 받았지요. 하지만 가만히 보니까 도저히 그 상태로
계속되서는 안되겠다 싶었어요.

예술이란 역사와 사회의식을 지녀야 하는데 당시 국전집행부에게는
그런 것은 없이 섹트의식만 강한 듯했거든요.

5.16군사정권에서 개혁론을 말해보라기에 비구상부문을 신설하자
했지요. 과거 없이 오늘 없는 만큼 기존부문을 인정하고 대신 새것을
넣자는 것이었어요. 이후 화단에 숨통이 트였지요.

-지금도 공모전을 반대하시는 걸로 아는데요.

<> 서화백 =결국 국전은 없어지고 대신 미술대전이란 것이 생겼는데
역시 문제가 많은 것같아요.

상이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제시한데 대해 격려하자는 것인데
새로운 전형을 내놓지 못한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상이란 적당히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개방이후 중국과의 교류에 힘쓰셨지요.

<> 서화백 =한중미술협회를 구성해 교환전을 열었지요. 중국의 경우
문화혁명으로 인해 예술부문이 오랫동안 침체됐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한국화를 가볍게 여기는 풍토가 갈수록 심해지는데요.

<> 서화백 =오랫동안 젊은사람들에게 편식을 강요했으니 당연한
결과지요.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반세기가 넘도록 서양것만 보여줬으니 그쪽것만
좋고 우수한 것으로 알게 된 것이지요.

홍수가 나면 둑을 막을 수 없어요. 어차피 비가 그치고 터진 둑으로
흙탕물이 빠져 나간 다음 새로 둑을 쌓고 새물을 채워야지요.

대세가 기우는데 한두사람이 막을 수는 없지요. 하지만 한바탕 격류가
지나고 나면 어느 것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겠지요. 젊은사람들을
편식시킨 결과인만큼 쉽게 고쳐지긴 어려울 거에요.

-젊은사람들의 경우 뭔가 쉽사리 얻어보려는 경향이 짙은데요. 미술계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만.

<> 서화백 =예술은 물론이요 정치 경제 모든 것이 하나의 노름이에요.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노름의 기술이란 결코 쉽사리 터득되는 것이
아니에요.

엄청난 시간과 정력,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한번 이겨보고자 하는 집념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요. 여기서 노름의 기술이란 사술과는 구분되는
것이에요.

집념과 노력,진실이 있어야만 얻어지지요. 결코 엉터리로 될 수 있다고
보지 않아요.

-젊은 작가들의 경우 선배 혹은 외국작품에 대한 모방 경향이
지나치다고들 하는데요.

<> 서화백 =좋게 말하면 모색이지만 실은 방황이지요. 젊은사람들에게
있어 방황은 불가피하다고 봐요. 어쩌면 방황이 길고 클수록 가능성도
크다고 봐야지요.

방황의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결코
백안시하면 안돼요. 유년 소년 청년기 없이 장년기가 있을 수는 없지요.

-괜찮다는 말씀인가요.

<> 서화백 =그럼요. 개인적으로는 화단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전망
또한 밝다고 봐요. 부분적으로야 물론 문제가 있지만 전체를 봐야 하니까요.

노사분규등도 지엽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젊은사람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면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느껴요. 나이든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벗어버렸어야 할 허울인지도 모르지요.

-화단에서는 많은 후진들이 선생님의 삶과 예술을 닮고 싶어하는데요.

<> 서화백 =스승을 닮는 것은 곧 자기파멸이에요. 겸재(조선조화가
정선의 호)는 한사람으로 족해요. 두번째 겸재는 아류에 불과하지요.
새로운 세대는 새옷을 입고 나와야지요.

스승의 역할이란 끝없이 변신을 꾀해 제자들로 하여금 일정한 틀에
매이거나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에요.

-새로운 구상이 있다면

<> 서화백 =가을에 개인전을 열고 내년 초겨울께 다소 규모가 큰
전시회를 갖고자 해요. 가을전에서는 큰 변화 없이 최근 해오던 작업을
보이겠지만 내년전시회에는 완전히 다른 것을 내놓을 예정이에요.

평면이 아닌 입체작업을 발표할 거에요. 작업의 성격상 해가 길 때
해야하는 것이어서 올여름 매달릴 계획이에요. 오랫동안 에스키스와
습작을 했어요.

(서화백은 29년 서울에서 출생,서울대미대를 졸업했으며 49년 제1회
국전과 54년 3회 국전에서 동양화부 최고상인 국무총리상과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31세때 국전 심사위원이 됐고 한국미협이사장 예총부회장 서울대
미대학장을 지냈다.

국내에서는 74년과 89년,외국에서는 79년(일본동경)과 83.85년(미국)
개인전을 가졌다)

< 대담=박성희문화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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