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대구 공단에 위치한 공작기계업체인 대구중공업.

정문을 들어서면 일반 가정집처럼 잘 정리된 정원이 맨넘저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 그리고 정원수가 너무나 잘 어울려 둔탁한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화단안에 서있는 자그마한 탑에 "노사는 하나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가족주의 경영을 표방하는 이 회사의 모토이다.

대구중공업은 CNC선반과 제어용 로봇등을 생산해 연간 1백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계업체로 노동조합 성격의 사우회가 회사경영에 까지 참여하는
이색기업이다.

사우회는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뿐만아니라 신입사원의 훈련, 근태
까지도 담당하고 있으며 퇴직을 하기 전에도 사우회장의 면담을 거쳐야 한다.

회사의 규정도 대부분 사우회가 직원의 의사를 수렴해 정하고 실천한다.

사우회장은 다른 회사의 노조위원장처럼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임금협상은 회사가 공개한 경영실적을 바탕으로 사우회가 요구하는 수준이
대부분 그대로 수용하기 때문에 하루에 끝난다.

생산직도 조장, 반장, 부직장, 직장 순으로 관리직과 같은 승진이 가능
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최영철 사우회장은 "사우회 중심의 회사운영이 근로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면에서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그는 모 대기업의 간부가 회사를 방문해 근로자들이 개인의 약속보다
회사일을 먼저 챙기는 것을 보고 오히려 의아해 하더라는 일화를 소개한다.

여사장도 "월급이 다른 회사에 비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대우와
주인의식이 있어 직장을 옮기는 사람이 거의 없고 평균 근속연수가 15-20년
이나 된다"고 자랑스러워 한다.

이회사의 가족주의 경영은 72년 현재의 여인영 사장이 회사의 경영을
맡기전 서울의 한 봉제공장에 근무한 체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는 근로자들이 식중독에 걸려 실려나가고 화장실은 눈을 뜰수 없을
정도로 나쁜 작업환경에서 근무하는데도 기업주는 이익만 챙기는 것을 보고
기업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

75년 사우회가 발족하고 노사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78년 국내최초로 NC
선반을 개발하는등 풀가동의 호황을 누리던 회사는 갑자기 닦친 오일 쇼크로
82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비운을 맞이 했다.

이회사의 사장과 근로자들은 인간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펼쳐나갔다.

사우회를 중심으로 한 직원들의 헌신은 눈물 겨웠다.

임금이 2개월이상 체불되는 악조건속에서도 상여금을 스스로 반납하고
비용줄이기에 직원들이 직접 나섰다.

단 한푼의 돈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식당의 국솥이 깨어지면
현장직원들이 스스로 일과가 끝나고 나서 고치고 일요일에 나와서 기계를
해체하고 수리를 했다.

정창식 관리담당이사는 "엄청난 크기의 공작기계를 시간외 수당도 없이
자발적으로 보수하는 것은 노사간의 신뢰와 자기회사라는 생각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회고한다.

여사장은 법정관리로 감원이 불가피해지자 소사장제를 도입해 공장
시설을 직원에게 불하했다.

최영철사우회장은 "대구중공업 출신중이 만든 1백50여개 공장중 상당수가
법정관리 시절에 독립해 지금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에는 가족까지 동반해 참여하고 있다"고 귀뜸한다.

이회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근로자의 교육과 투자는 결코 인색하지 않다.

근로자의 20%이상이 독일과 일본에 기술연수를 다녀왔을 정도이다.

법정관리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원복지투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88년부터 7천만원의 사우회 기금 적립이 시작었으며 1억여원의 주택자금과
학자금을 지원했다.

1인1써클운동으로 전직원이 바둑과 등산등 6개의 써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사장은 "사원복지는 비용이기 이전에 제일 큰 투자"라며 자신의 경영
신조를 밝힌다.

여사장은 직원들과 공동으로 회사를 일으킨만큼 창립 55주년이 되는 오는
99년에 기업을 공개하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배분하겠다는 포부를 힘주어
말하다.

[대구=신경원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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