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장실이 비어있는 은행이 부쩍 많아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출장중"이어서다.

물론 은행장들의 출장이 잦은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엔 다르다.

한번 출장을 떠나면 보통 2~3일은 걸린다.

하루만 자리를 비워도 결재서류가 수북히 쌓이는게 은행장자리다.

그런데도 은행장들은 "장기출장"을 마다하지 않는다.

은행장들이 내부 일을 미뤄가면서 찾아가는 곳은 지방점포다.

지방근무직원들을 격려하고 거래중소기업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은행장들이 최근 앞다투어 지방출장에 나서고 있는 것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자치제선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처럼 여당을 돕기위한 "선거운동용 행차"만은 물론 아니다.

지자체선거는 곧 지방시대의 개막을 뜻한다.

지방시대의 주역은 단연 지역중소기업이다.

이들을 고객으로 먼저 끌어들이자는게 은행장들의 지방출장에 담긴
뜻이다.

이렇듯 지방시대에 대비하려는 은행들의 노력은 벌써 구체화되고
있다.

은행장들의 지방출장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올들어 지난5월까지 7대시중은행이 신설한 점포 1백11개중 98개가
서울이 아닌 지방에 위치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가하면 대부분 은행은 조직을 서울중심에서 지방중심으로 다극화했다.

지난1월 대구.경북본부를 만든 외환은행과 대구영업본부및 중부영업본부를
신설한 상업은행이 대표적이다.

상업은행의 경우 은행장을 포함한 전체 임원 15명중 6명이 아예
지역영업본부장으로 그 지역에 상주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상대하고 지역업체와 밀착경영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노력의 흔적은 얼마든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를 지키고 빼앗는 싸움이 한창이다.

서울시와 부산시금고를 맡고 있는 상업은행과 도금고를 관리하고 있는
제일은행은 수성전략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반면 지방은행과 농협은 물론 다른 시중은행들조차 각종 지역연고를
내세워 도금고를 빼앗을 기세다.

지방화시대를 선점하려는 은행들의 노력은 뭐니뭐니해도 지방중소기업
유치싸움에서 치열해지고 있다.

은행장들이 경쟁의 선두에 서 있음은 물론이다.

먼저 은행장들의 지방출장리스트를 보자.이관우한일은행장은 지난4월13일
부터 지방영업본부를 차례로 순방하고 있다.

이행장이 지방출장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현지 중소기업체와의
만남이다.

이 자리에서 이행장은 신용대출확대 대출금리인하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중소기업들에 유혹의 손길을 보냈다.

우찬목조흥은행장도 지난달 26일부터 3주간일정으로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지방을 순회방문,거래업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또 장명선외환은행장과 이규징국민은행장도 지난달 하순부터 지방점포와
거래업체 방문에 나섰다.

정지태상업은행장은 지난 29일 부산소재 세명전기공업을 작업복차림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이밖에 이우영중소기업은행장 박종석주택은행장 문헌상수출입은행장등
국책은행장들도 잇달아 지방을 방문,거래업체대표와 간담회를 가졌다.

은행장들의 지방출장은 단순히 일과성행사로 그치고 있지만은 않다.

지방중소기업을 상대로한 각종 행사를 개최하거나 지방중소기업전담반을
잇달아 만들고 있다.

중소기업은행은 부산의 중소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중국.베트남 투자설명회"
를 가졌다.

아울러 각지점별로 이업종교류회를 조직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방중소기업전담반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전담반에선 신용대출을 늘리고 대출금리를 낮춰주기위한 "지방중소기업
전용 대출심사기법"을 만들었다.

국민은행은 아예 오는 7월말까지 "중소기업지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행장은 물론 전임원과 부장 지점장들이 캠페인시작 일주일동안
3만여개의 중소기업체를 방문,거래관계를 튼튼히 했다.

다른 은행들도 "지역에서 번돈은 지역에 환원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지역상공인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이렇듯 은행들의 눈과 귀는 벌써 지방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지방중소기업과 지역연고업체를 확보하기위한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이렇게보면 적어도 은행에서만은 지방화시대가 본격 열리고 있는듯
하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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