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시 한복판에 위치하고있는 한일합섬본사 정문은 인근 신시가지 고층
아파트와 비교하면 오히려 초라한 느낌을 준다.

설비가 대체로 자동화된데다 종업원수도 1천8백여명으로 줄어 공장에는
부지런히 혼자 움직이는 기계소리만 들릴뿐이다.

한때 2만8천여명의 종업원이 있었던 공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쇠락의 모습은 보이지않는다.

종이조각 하나없이 청결한데다 가끔씩 보이는 어린 여사원들도 회사를
자기집처럼 아끼는 생활이 체질화 돼 있다는 느낌이다.

31년간 쌓아온 전통이 곳곳에 배어있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그랬듯이 이회사도 지난 87년 노조가 생긴이래 첫
분규를 겪게됐다.

종업원 1만5천명으로 마산.창원지역 최대사업장이었던 한일합섬은 재야
노동세력과 학생운동권의 표적이었다.

유재룡 현노조위원장도 당시 "핵심주동인물"이었다.

이회사는 87년 4월 임.단협을 마쳤으나 "6.29선언"이후 노조의 요구로
그해 8월 재협상에 들어갔다.

당시 노조의 요구는 임금 12%인상안을 포함해 1백여가지에 달했다.

회사측도 섬유경기침체로 요구를 들어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8월7일 근로자들은 끝내 파업에 돌입했다.

근로자들은 철야농성을 하며 일주일간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출퇴근카드를 찍었다.

금연지역에서 흡연하다가도 경비과장이 지나가면 담배를 껐다.

일부 젊은 근로자들이 술병을 들고 출근하기도 했지만 수위가 "사규위반"을
이유로 압수하면 순순히 꺼내놓았다.

마창노련세력과 인근 대학생들은 한일합섬에 들어오지 못했다.

노조가 "우리 권리는 우리가 찾겠다"며 정중히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파업은 하되 회사는 지킨다는 순수함을 갖있었다.

결국 김중원회장이 내려와 적극 중재에나선 끝에 회사는 정상을 되찾았다.

87년 분규를 비교적 무난히 넘기고 노사가 힘을 합쳐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도 이런 전통이 있어 가능했다.

근로자들의 애사심이 위기를 발전의 기회로 역전시켜놓은 것이다.

지난해 이회사가 5년만에 흑자를 낸것도 바로 이같은 노사관계안정에
힘입은 바 크다.

섬유업계에서 한일합섬의 노사관계는 "신기하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매년 임단협을 앞두고 노사가 함께 실무팀을 구성해 전국동종업체를
찾아다니며 임금실사를 벌이는 점이 그렇다.

다른 회사 노무담당자들은 "어떻게 노사가 같이 다니냐"며 부러워할 정도
이다.

이회사는 본교섭의 효율을 높이기위해 92년부터 노사실무자들이 동종업계
를 찾아다니며 실사를 벌이는 "노사실무자 워크숍제도"를 운영하고있다.

노사양측이 같이 조사한 자료를 밑바탕으로 임금인상안과 제시안을 내놓기
때문에 그 차이는 적을수밖에 없고 그만큼 본교섭기간은 짧아진다.

노조가 혹시 조합원들로부터 의심을 받을까봐 "강성"으로 알려진 조합원을
대동시켜 "객관적 검증"을 받고 있다는 것이 박정길이사의 귀띔이다.

이밖에 노사상호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노사합동연수 노조대의원
해외연수 노조실무협조전진대회를 정례화해 단합을 다지고 전문성을 제고
하는 프로그램을 확충해왔다.

또 섬유경기가 어렵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단기적인 임금인상보다는
장기적인 후생복지부문의 확충에 노사가 공동 노력하고있다.

유위원장도 "노조활동도 대안없는 투쟁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며 "정당한
분배를 위한 몫을 주장할때는 합리적으로 주장해야하지만 회사발전을
위해서는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말 취임한 김용구사장도 "노동조합의 선진적 면모를 보고 큰 힘을
얻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일합섬은 지난달 4일 "세계는 무한경쟁시대 노사는 무한협력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노사화합행사를 가졌다.

같은날 화섬업계 최초로 임금협상도 타결했다.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건설.유통업에 뛰어들면서 과감한 사업
다각화를 시도할수있는 배경도 노사화합이라는 든든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팔도잔디로 유명한 이회사의 한일여실고는 74년부터 이제까지 모두 4만
5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당시 이학교는 "어떤 시련과 곤궁도 극복할수 있는 소녀 이외에는 이교문
을 들어설 수없다"는 것을 교시로 삼았다고 한다.

16세 어린 나이에 입사해 수출입국의 공을 세운 이들이 전국각지에서
"근검과 사랑"의 정신을 전파하고있는 셈이다.

"여직원들을 모집하러 완도옆 신지도에 갔더니 한일여실고 1기졸업생이
영어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선생님은 학생들을 꼭 한일합섬에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노무과
고참대리 최상권씨의 말이 실감나게 들렸다.

< 마산=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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