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축가 김원씨를 만났다.

국립국악당을 설계한 그는 요즘 주한러시아대사관을 설계중이라고 한다.

그는 "한국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해 의외로 많이 알고 있다는데 대사관
사람들이 놀라더라"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외국과 외국사람에 대해 많이 안다.

우리나라의 철학자이름은 몰라도 샤르트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화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피카소나 고흐는 안다.

우리나라 작곡가 이름은 한사람도 못대면서 외국의 유명작곡가는 줄줄이
왼다.

공부도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하고 와야 대접받는다.

한국사를 미국에서,한국미술사를 프랑스에서 전공하고 돌아온다.

심지어 화장법과 미용법도 외국에서 배워와야 행세한다.

세계화가 유행어가 된 이후 방송가의 MC는 물론 탤런트 가수까지 이민갔다
돌아온 사람들이 득세하는 듯보인다.

음악과 그림에 약간의 소질만 보여도 미국이나 프랑스 이태리로 간다.

글로벌시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외국에 나가야함도 물론이다.

다만 예술유학의 경우 과시를 위한 것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

더욱이 유학의 결과 자칫 자국의 문화와 예술을 가벼운 것으로 여기게
될수 있다는 위험 또한 간과하기 어렵다.

최근 서울의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30주기기념전"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작가의 대표작 25점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이
전시회에는 하루 8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박수근(1914~1965)은 무학의 화가다.

강원도양구 출신으로 국민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일본유학은 커녕 중학교도 못갔다.

혼자 공부했고 혼자 그렸고 어느파에도 속하지 못한채 혼자 살다 갔다.

곤궁하던 시절 미군속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연명했고, 외로움과 가난속에
백내장과 간질환으로 고생하다 회갑이 안된 나이에 세상을 떴다.

생전에 그의 그림을 산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의 대사관관계자나
군인가족이었다.

변변한 개인전 한번 못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한국현대미술사상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한국현대미술 100년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라는 사실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프랑스의 드니즈 르네 FIAC회장을 비롯한 구미의 미술관계자들은 각기
자기나라 미술관에서 박수근전을 열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유는 그의 그림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20세기 세계미술사속 어느작가의
것과도 비슷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기법과 구조는 말할 것도 없고 내용도 흉내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속에 있는 사람은 서양인이 아닌 것은 물론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닌
한국사람이다.

1950~1960년대 이땅의 서민이 주인공들이다.

그림속 여인들은 냇가에서 빨래를 하거나 보퉁이를 인채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동생을 업은채 엄마를 기다리는 소녀의 모습도 보인다.

남정네들 또한 길이나 시장에서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은채 곤궁한 시절을
견디고 있다.

박수근의 그림에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옛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동족상잔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는 살기 위해 이고 진 모습.

척박한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뭔가 뒤엎어버리고 싶은 격함 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하려 애쓰는 모습.

딱이 뭔가 크고 화려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영위하고 그것이
보다 나은 내일의 초석이 되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희망을 가진 우리의
지나간 모습이 남아 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곤궁한 것이었다고 해도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 우리가 존재
한다.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큰 것을 바라지 않고 다만 자신의 터전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산 사람의 의지와 믿음이 얼마만큼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이 신화를 그리워하는 것은 신화속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할 것같은 상황,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같은 일이
신화속에서는 가능한 탓에 신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생전에 1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고흐의 신화가 있기에 오늘도 전세계의
많은 무명작가들이 화폭과 씨름한다.

동시대인의 삶은 담지 않은 어떤 세계적인 예술도 존재하지 않음을 감안
한다면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이제 우리시대의 신화로 창출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곤궁한 시대를 곤궁하지 않게 견딤으로써 오늘 이땅에서 고단한 생을 영위
하는 이들에게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까닭이다.

위대함이란 별게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