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초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였던 파우사니아스가 쓴 관광
안내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피레우스(아테네의 외항)에서 내려 오다 보면. 매난드로스(희극작가)의
묘와 유해가 없는 유리피레스(비극시인)의 기념비가 눈을 끈다"

이 안내서는 고대로마인들이 그리스를 여행할 때 휴대하고 다니던
것이었다.

그들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감현들로 가득찬 유적을 둘러 보는 것이
교육적이라는 사실을 영국 귀족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아들들을 외국에 보내 1~2년동안 여행하게 했다.

교육의 마지막 단계로 행해졌던 이른바 유럽대륙순회여행이었다.

가정교사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외국문화를
흡수한 뒤 귀국했다.

그것은 마침내 온가족이 하인을 거느리고 유럽순회여행을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가족들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대륙을 두루 둘러 보면서 고용된 가정교사
로부터 외국어와 예술을 배우기로 했다.

그를 계기로 영국인들의 해외여행 욕구가 불출하게 되자 토머스 쿡이라는
젊은 침례교 선교사가 1863년 파리란체관광을 주선했다.

세계관광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 무렵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사가 관광업에 뛰어 들었으나
4개월동안의 수입이 603달러밖에 안되자 손을 들고 말았다.

미국인들의 해외여행 욕구를 자극한 것은 2차대전이었다.

유럽지역에 참건하여 그로의 문명을 견문한뒤 귀국한 젊은이들이 가족을
데리고 유럽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서 해외 관광이 시작되었다.

그뒤 미국의 눈부신 경제적 번영은 미국인들의 해외여행을 가속화시켰다.

해외여행은 오늘날 실질소득의 중대, 교육수준의 향상, 교통수단과 매스
미디어의 발달등으로 세계의 보궐적인 추세가 되었다.

거기에 거대한 규모(95년도 3조4,000억달러 추정)의 세계관광지시장을
들러 싸고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다.

냉전상황과 빈곤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던 한국인들의 관광욕구가 소득
향상과 해외여행자유화조치로 분출되기 시작한지는 겨우 6년반가까이 밖에
되지 않았다.

그동안 해마다 해외관광객들의 격중으로 대외관광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가운데 지난해에는 한국인의 미국관광증가율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미지의 세계에의 탐구욕이 가져온 소산인지, 허영심에 편성한 과소비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