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모자라는 양도를 보태기 위해 정부가 북에 조건없이 쌀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한데 대하여 본란은 제공하되 가급적 빨리 보내
주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한바 있다.

29일에는 통일원차관 주재로 9개 부처 실무자가 모여 동서 연안항로의
이용,재원으로서의 남북한 협력기금의 사용이 논의되었으며 최소한
그러한 원칙과 방향은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덧붙여 대북 곡물지원은 첫째 북의 체면을 고려해 국내
재고미뿐 아니라 제3국의 곡물을 남북협력기금으로 결제하여 현지
직송하며,둘째 일정량 아닌 북의 부족곡물 전량이라도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당국자의 말이 보도되었다.

고위 당국자라고는 해도 익명이므로 그 말꼬리를 잡아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다루면서 존중하지 않으면
안될 점은 그 목적이 북한주민의 기근해소라는 방향감각이다.

이색제의로 흥미나 돋구고 유야무야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대북 식량원조를 통일전략의 하위 전술로 보는 시각도 있을수
있다.

논리상 통일지상주의라면 북의 기근이 극심할수록 통일을 당긴다는
가설이 가능하고 따라서 식량난 악화를 방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논법이 있음직하다.

그러나 그것은 맹목적적 통일이다.

분할민족의 재결합으로 평화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 바른 통일관이라면
재북동포의 기아를 마다않는 통일의 달성은 평화와번영의 저해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현실이란 일도양단하듯 단순한 것도 아니다.

가령 인도주의에 매달려 북의 동포가 굶주리면 국고를 털어서라도
전면 원조를 해야지 타산을 해서 되느냐고 누가 나무랄수 있겠는가.

따져보면 이 문제가 표면화된 계기는 지난주 북한이 일본에 쌀
긴급수출을 요청했다는 보도였다.

경수로문제 교착에다가 일본의 적극적 대응이 내다보이는 속에 정부의
대북 쌀지원이 급진전하는 모습이다.

북의 계산대로인지 모른다.

본란은 지난번 "신속히 보내주라"고 권고한데 이어 "신속하되 조용히"를
덧붙이고 싶은 일면이 있다.

그러나 순수한 생각이 그냥 받아들여질 만큼 남북의 대치상황은
간단치 않다.

생각해 보자.김일성 생존시부터 "이팝에 고기국"이라느니 "쌀은
공산주의"라느니,쌀의 긴요성에 대한 북한정권의 신념은 강했다.

한마디로 만성적 쌀부족의 표현이다.

한발 충답붕괴로 전곡물 부족이 심화된 오늘의 상황은 그 이상이다.

그 가운데 북의 지도부가 비상용 쌀비축에 기울인 노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잠시라도 이런 시각에 유의한다면 쌀한톨의 대북반출도 어렵다.

적어도 선행조건 없이는 불가능한 일면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럼에도 통일접근이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또 일본에 앞서기
위해서라도 북에 쌀을 제공하려면 조용히 신속하게 해야한다.

그래야 성사가 될뿐 아니라 효과도 있다.

부족분 전량을 도와줄 용의가 있다는 식의 큰소리 앞세우는 처신은
삼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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