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콩쥐는 엄마가 없잖아.나는 팥쥐 할거야" 그러고 다니는 우리딸 다혜는
지금 다섯살이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나가 저녁에도 음악회 가기가 일쑤인 만큼
엄마얼굴을 보기조차 쉽지 않은 다혜에게 늘 미안하다.

그런 우리 딸이 네살이 되고 다섯살이 되면서 혼자가던 공연장엘 다혜와
한번 두번 같이 갈수 있게 되었다.

"피터 팬" "호두까기 인형" "푸른 구슬" "홍길동" "호랑이 이야기"등등
물론 혼자라면 갈 이유가 없는 공연들이 그 대상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이와 함께 공연장을 찾게 되면서부터 문화현장을 탐색하는 내
시각에는 또 하나의 물음이 덧붙었다.

"어떤 무대를 보여주어야 할까. 어떤 공연이 아이들에게 좋은가"

다혜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무대는 어린이용 뮤지컬이라는 "피터 팬"
이었다.

1년쯤 전이었던 그때 우리는 그 "피터 팬"을 세번 보았다.

그것은 "피터 팬"이 세번이나 볼만큼 뛰어난 작품이라서가 아니었다.

놀라움과 호기심이 넘쳐 어쩔줄 몰라하는 다혜를 보며 궁리 끝에
한 실천이었다.

줄거리를 가진 노래와 연극,그리고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들이 함께
진행되는 음악극을 제대로 기억하기에는 한번의 관람이 충분치 않다는
평론가로서의 경험이 머리속에 떠올랐고,어떤 점이 자신에게 놀랍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인지를 다혜 스스로가 느끼게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이후 한동안 "피터"가 된 다혜에게 엄마는 "웬디"였고 만만한 막내
삼촌은 "포크짱 아저씨"였다.

장음계를 벗어난 반음들이나 빠른 엇박의 리듬으로 된 선율도 그
호기심과 흥분 앞에선 금세 따라 부르는 "전혀 어렵지 않은"노래가
되었다.

반복하여 보고난 공연을 사실적으로 기억하기 보다는 한번의 충격으로
남는 잔영들을 새기는 것이 아이에게 일면 더 효과있는 관람교육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대에서 접한 줄거리를 기억해내고 그로부터 또 다른 상상의
세계를 놀이속에서 만들어내는 경험에도,그저 다양한 무대를 어리둥절하게
계속 바꾸어 보여주는 것과는 또 다른 장점이 있는게 아닐까.

음악회에 가는 어른들이 객석에 앉았다고 모두가 들려오는 음악에
감동하고 몰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아이를 공연장에
데려가는 것만으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느낌과 표현이라는 공연 예술의 세계가 아이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나려면 무대위 인물의 공연실력 보다는 아이가 무대를 수용하는
과정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화려한 배경에 유명인이 출연하는 설명적인 뮤지컬
무대보다도 간결한 소품과 생략된 장면들이 아이로 하여금 줄거리와
상황을 추론하게 하는 소극장 아동극이 좋아 보이기도 한다.

도무지 감동이 일지 않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듣고도 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훌륭하다"고 말해야 하는 다수의 사회, 서구문화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외고 사는 부모세대의 문화적 열등감을 우리 딸의
시대에서조차 물려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새삼 간절해진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