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할머니의 말씀대로 대옥 앞으로 와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얼굴이라고 여겨졌다.

병색이 있는듯한 대옥의 얼굴은 그 병색으로 인하여 오히려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서 춘추시대 월 나라의 미인 서시가 생각났다.

서시는 늘 병을 앓으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다녔는데도 무척 아름다웠다.

그래서 어느 못생긴 여자가 서시처럼 이맛살을 찌푸리면 아름답게
보일줄 알고 그렇게 하였는데 더 못생겨 보여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그것을 서시빈목 이라고 한다는 것도 보옥은 알고 있었다.

"이름이 뭐니?"

보옥이 여전히 눈길을 대옥에게서 떼지 않으며 넌지시 물었다.

"임대옥"

"자는?"

"자 같은 것은 없어요"

"그럼 내가 좋은 자를 하나 지어주지. "빈빈"이 어때? 서시보다 더
아름다우니 빈 자를 하나 더 붙여주는 거야"

그러자 옆에서 듣고있던 탐춘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호호호, 또 허튼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는구나"

"따지고 보면 책이라는 것도 다 허튼소리지 뭐. 사서는 빼고 말이야"

보옥은 탐춘에게 대꾸하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대옥에게 정답게 물었다.

"누이도 옥을 가지고 있지? 그렇지?"

다른 사람들은 보옥이 말하는 옥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으나
대옥은 육감으로 그것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보옥이 태어날때 입에 물고 온 옥과 같은 종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없어요. 그런 희한한 옥을 아무나 가질수가 있나요?"

대옥은 그런 옥을 가진 보옥이 부럽다는 듯이 말한 것이었는데
보옥은 무슨 오해를 하였는지 갑자기 버럭 화를 내었다.

"이 따위가 뭐가 희한해?"

하며 목에 걸고 있는 옥구슬을 손으로 잡아떼어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대부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어쩔줄을 몰랐다.

"흥, 이 구슬이 영험이 있다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 그것도 알아 맞히지 못하는 주제에 영험은
무슨 영험. 다 허튼수작이야. 난 이 따위 물건 싫어"

대옥은 왕부인의 말마따나 보옥이 정말 못 말릴 위인이구나 싶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