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10월 미국 위스콘신주의 한가한 어느 시골길을 미국측 사업파트너인
밀러씨와 함게 드라이브하면서 한담을 즐기고 있었다.

긴 상담에 서로 지쳐있었고 내일은 최종담판을 해야하는 처지였으므로
우리는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뉴욕태생의 밀러씨는 어렸을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미술관에 자주 다닌탓으로 미술감상이 취미가 되었다면서
쟈코메티를 아느냐고 물어왔다.

쟈코메티라면 빼빼 마르고 유난히 키가 큰 입상을 즐겨 제작한 스위스의
조각가,내가 아주 친근하게 느기는 예술가다.

인생의 고독을 되씹으며 세상의 온갖 고뇌를 홀로 짊어진듯한 모습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코믹한 사지의 프로포션과 이를 받치고 있는 엄청나게
큰 두발은 보는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한다.

화제가 반 고호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어느덧 친한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 얼마전에 BBC방송에서 고호의 "감자먹는 사람들"( Potato
Eaters )의 해설을 주워들은 실력을 바탕으로 하다드 MBA출신의
밀러 부사장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스위스의 세계적 화학회사와 매우 중요한 협상을 다루고 있을때의
일이다.

여러차례 상대국을 내왕하면서 최종단계에 이르러 서울에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여러날 승강이를 했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난제를 다음날은 가부간
결판을 내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룸싸롱에 초대받은 시바의 부사장은 음악 애호가였다.

칸소네로부터 시작된 합창이 베르디와 푸치니의 아리아로 이어지고
독일의 리트로 옮겨가면서 목이 쉴 때가 되어서야 연창이 끝나었다.

뻘뻘 흘린 땀을 닦으면서 그분은 "당신은 문화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분은 분명히 그의 실언이었다.

서양문화만이 문화일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위의 두 경우에 우리는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같은 문화권의 인사로 인정되면 협상이 순조로와 지는 것이다.

외국인과 문화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이 나라의 역사 지리 풍습을 이해하고 이질문화를 수용할수 있는
능력은 세계화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행동하기에 따라서는 풍습적으로 이방인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외계인으로 상대방에 비춰질수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정작 마음은 대원군의 쇄국주의자가
아닌지 모두 함께 반성해 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5일자).